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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 재판이 사형 집행 45년 만에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19일 김 전 부장의 ‘내란목적 살인’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의 가혹 행위가 인정되는 만큼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봤다. 당시 불투명한 수사·재판에 대한 ‘사법적 교정’일 테지만, 오래도록 정치적 금기였던 사건에 대해 아주 무거운 ‘역사의 법정’도 함께 열리게 됐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 그는 법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당시는 부마민주항쟁으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고, 핵개발 문제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유신독재가 내치·외치에서 모두 중대 고비에 처했던 즈음이었다. 김 전 부장은 이듬해 5월20일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 혐의가 인정돼 사형이 확정됐고, 나흘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 전 부장 재심의 핵심은 그가 ‘내란’ 혐의를 벗을 수 있느냐 여부다. 10·26 사태는 국가 원수 살해의 실체는 분명했지만, 그 동기는 오래도록 논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강압적 수사와 의문투성이인 재판 과정 때문이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당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허욕이 빚은 사건’이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군의 동원 등 살해 이후 계획이 분명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보안사가 쪽지로 개입하고 변호인조차 판결문을 열람하지 못 하는 등 석연찮은 일들이 많았다. 재심 심문기일에 출석한 안동일 변호사는 “당시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 치가 떨리고 뼈아픈 경험”이라고 했다. 그래서 재심 재판은 오히려 사법적 절차의 민주적 정당성 여부가 방향을 가를 공산이 크다.
김 전 부장의 내란 혐의 판단은 역사 법정에도 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권력 찬탈 혐의를 벗는다면, 결과적으로 박정희 독재를 끝낸 행위에 대한 재평가와 맞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기록하는 과정에서도 의미가 있다. 민중의 편에서 민중과 함께 독재자를 응징한 것은 아니기에 그의 살인이 미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불의한 권력자에게 경계는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