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형사과장의 ‘크라임 노트’
제19화. 죽이고 싶었는데 죽지도 않아요
분노의 끓는 점
숨이 턱 막히는 더위로 지글거리던 한여름밤 자정 무렵, 한 통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잔혹한 연극이 막을 내린 무대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거실에 서 있던 중년 여성 송경미(가명, 48세)는 공허한 눈빛으로 우리를 맞았다. 눈물도, 애원도 없었다. 침묵만 남아 있었다.
방 안에는 83세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바닥은 피와 물로 흥건했고, 벽과 가구 곳곳에는 튀어 오른 혈흔이 남아 있었다. 손잡이가 부러진 프라이팬과 찌그러진 냄비가 방 안에 나뒹굴었다. 그 참혹한 풍경은 말보다도 선명한 증언이 되어, 범행이 얼마나 반복적이고 집요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송경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당황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범행을 감추려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저 “죽이고 싶었는데 죽지도 않는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 순간 우리는 직감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범행의 사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의 삶 전체가 남긴 어두운 흔적을 해독해야 하는 일이 될 것임을.
늦은 저녁, 송경미는 혼자 술을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문득 라면이 생각나 주방에 냄비를 올리곤 옆방의 엄마에게 물었다.
별 의미 없는 한마디였지만,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왔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나겠지.’

라면 냄비의 끓는 물처럼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녀는 곧장 냄비를 들고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평온하게 잠든 어머니의 얼굴은 분노의 표적이 돼버렸다.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고, 연이은 둔탁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어머니의 몸부림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곧이어 찾아온 정적.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송경미는 그제야 모든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죽음을 몰랐던 딸
조사실에서 마주한 송경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뜻대로 되지 않은 삶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오랫동안 외면당해 온 상처가 고여 있었다.
112 접수를 받고 출동한 당시, 피해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조사 도중 피해자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슴 한쪽에 무거운 돌이 내려앉는 듯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가해자에게 곧장 알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회의 빛이 스칠 수도, 또 다른 핑계로 말을 흐릴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