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법 기술은 우주와 지구, 군사와 민간,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핵심 기반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활용 영역에서 항법 기술의 정밀도와 신뢰성은 곧 성능과 안전의 기준이 되며,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능력은 기술 선진국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고도화된 항법 시스템은 수백년간 축적된 기술적 진화의 결과물이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다.
인류가 항법이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은 별자리를 따라 항해했고, 중국에서는 자석을 활용한 나침반을 발명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천문 항법이 발달했고, 유럽은 이를 바탕으로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항법 기술은 단순히 길을 찾는 수단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확장을 가능케 한 도구이자, 문명의 힘을 상징하는 기술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항법은 본격적인 기계화의 길로 들어섰다. 항공기의 등장과 함께 인간의 감각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정밀한 항법이 요구됐고, 이에 따라 관성 항법 기술이 등장했다.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계를 통해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위치와 방향을 추정하는 이 기술은 전파가 닿지 않는 환경에서 유용하게 활용됐으며, 오랜 기간 항공기·잠수함·미사일 시스템에 적용됐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누적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항법 기술의 진정한 전환점은 GPS를 중심으로 한 위성항법의 등장이었다. 위성 신호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항법 기술은 민간 영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자율주행차, 스마트 물류, 위치기반 서비스 등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하지만 극한 환경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드러났다. 전장과 같은 상황에서 전파 차단(재밍), 위치 속이기(스푸핑) 등 다양한 교란 시도가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항재밍·항기만 기술이 적용된 위성항법과 관성항법 융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 유도 무기, 무인기, 지능형 전차와 같은 전략 무기체계에서 항법의 신뢰성은 그 위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전파 교란에 강인한 항법 시스템은 전장 상황의 판도를 좌우하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 안보 역량의 핵심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밀 항법 시스템의 개발과 구현에는 중소 규모 방산 전문 기업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항법은 매우 세분화된 분야로, 자이로 센서, 필터 알고리즘, 전자파 차폐, 수신기 회로설계 등 고도 전문성이 필요한 요소 기술들로 구성돼 있다. 대기업이 무기 체계 개발을 주도하더라도, 각 구성 모듈의 정밀성과 신뢰성은 개별 중소기업의 연구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항재밍 수신기, 위성항법 복합 알고리즘, 군용 내비게이션 모듈 등을 개발·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항법 기술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항법 기술은 단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기술 체계다. 기술 간 융합과 상호 보완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현재는 기존 관성항법의 장점을 위성항법과 결합하고 전파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래의 항법 기술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축적된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정교한 개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양자 센서, 통신 기술 등 신기술과의 융합도 결국 기존 항법 기술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손석보 덕산넵코어스 상무이사 sbson@oneduk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