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권당인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이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우리의 최대 숙적(Hauptgegner)”이라고 선언했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를 확장하기 위해 극우 세력과 손잡아야한다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기민당 지도부는 이를 끝내 거부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20일(현지시간) “AfD와는 협력할 수 없다”며 ”향후 몇 년간 AfD는 아마도 우리의 최대 숙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당 지도부가 전날부터 이틀간 내년에 5개 주에서 열리는 선거를 앞두고 AfD와 협력 여부를 논의한 결과를 밝히는 자리에서다.
기민당 대표이기도 한 메르츠는 AfD에 대해 “기민당이 추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독일을 원한다”며 “근본적인 정치 신념에서 다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AfD가 내미는 손은 우리를 파괴하기 위한 손”이라고도 강조했다. 강성 지지층만을 의식한 행보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독일의 중도좌파 언론 슈피겔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북동부 지역의 작센안할트주(州)와 메크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두 곳에선 기민당이 AfD와 협력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파다했다고 전했다. 이 두 곳을 포함해 옛 동독 지역에선 전통적으로 CDU가 강한 지지세를 보였으나 최근엔 AfD의 지지율이 큰폭으로 오르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두 곳에선 AfD가 주의회의 1당을 차지할 가능성도 관측된다. 이에 동독 지역에 기반을 둔 기민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지난 2018년 당 차원에서 채택한 ‘협력 불가 결의’를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결의는 AfD와 어떤 협력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발표는 연립정부 파트너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과는 시민수당 개편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시민수당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독일 국적자의 실업수당 수준으로 주어지는 지원금이다. 기민당은 “예산 건전화 차원에서 지난 정부 시절의 과도한 인상분을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민당은 “전체 수당 체제 자체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민당이 연정 파트너와 균열을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AfD와 협력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은 자칫하면 정통 보수 정당으로서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AfD는 불법 이민자 추방과 독일의 유럽연합 탈퇴 등을 주장한다. 베를린 자유대 정치학자인 율리아 로이셴바흐는 독일매체 RND와 인터뷰에서 “기민당이 극우 정당과의 협력을 시도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극우 정당 지지세가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서독 출신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AfD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 AfD와 협력이 가시화될 경우 해당 지역에서 지지층 이탈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