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그리스 조각 개론을 가르치면서 한국어로는 충분히 번역되지 않는 개념을 발견했다. ‘의인화’라는 말이다. BC 4세기 말 스코파스가 조각한 ‘포토스(pothos)’는 앳된 모습의 늘씬한 소년이 고개를 쭉 빼어들고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사진). ‘포토스’는 동경 또는 갈망이라는 뜻이고, 스코파스의 조각상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BC 4세기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한 이런 현상을 영어로는 ‘personification’이라 하고, 우리는 흔히 이를 ‘의인화(擬人化)’로 번역한다. 그러나 의인화는 사람이 아닌 것에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이는 말이다. 영어로는 ‘anthropomorphize’가 더 적절한 번역이 된다. 미키 마우스는 쥐를 의인화한 예다. 포토스의 경우와 어떤 면에서 보면 이와 반대의 개념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형태에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때로는 ‘화신(化身)’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 승리의 화신 니케(Nike),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로마(Roma) 여신 등이 그렇다. 미국 정부를 나타내는 엉클 샘(Uncle Sam)이나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인간화한 자유의 여신(Lady Liberty) 또한 이 관습의 지속성을 나타낸다.
초기 소승불교의 예술은 부처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발자국이나 파라솔 같은 흔적으로 부처의 존재를 암시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그리스에서는 신은 물론 추상적인 개념까지 인간의 형상을 띠는 현상은 고대 그리스 특유의 휴머니즘 산물이다. 요즈음은 서양사를 지배해 왔던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이 다양한 형태로 판치고 있지만, 휴머니즘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21세기에는 동방의 고전이 가르치는 인간과 대자연의 화해가 새로운 가치의 지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