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밤하늘에서는 땅밑에서는

2025-01-07

지난 연말에는 세상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등 세계 곳곳에서 그러했다. 휴대폰 잠금 화면을 열어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져왔다. 소식은 그만큼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도저히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소식들이 일상에 쏟아져 들어올 때면 나는 세상이 유독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기술 발전으로 현대인이 그런 소식을 더 접하게 되는 건지 헷갈려진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너무 많은 소식을 알고 지내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들이 뉴스를 확인하며 사회 변화를 감지하고 응답하는 일과 매일의 일상을 보호하고 꾸려가는 일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기를 소망한다. 우리를 숨쉬게 하고 버티게 하는 순간들, 이를테면 눈이 온 거리를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일 같은 것은 너무 사소해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편 지혜를 얻고 싶어 약간은 역사의 소용돌이 바깥에 머물며 자신의 일을 해나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카티아와 모리스 크라프트 부부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프랑스의 지구화학자와 지질학자인 두 사람은 1966년 처음 만나 1991년 일본의 화산에서 생을 마치기까지 화산을 향한 지치지 않은 열정을 공유한 연인 사이다. 두 사람은 프랑스와 독일 접경인 알자스에서 2차 대전을 겪으며 자랐다. 젊은 시절에는 베트남전 반전 시위에 앞장서 참여하기도 했다. 모리스는 화산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카티아와 나는 인류에 실망했기 때문에 화산학을 택했어요. 화산은 인간보다 위대하니까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에 관한 연구니까요.”(영화 <화산만큼 사랑해>에서 인용)

이후 두 사람은 생애 내내 세계의 활화산을 누비며 산다. 용암이 흐르고 화산탄이 비처럼 떨어질 때 도망가기는커녕 분화구에 점점 더 다가가면서. 검고 붉은 이 짐승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촬영하며 산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영상은 20~3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CG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엄하고 웅장하다. 아름다움을 위해 찍지는 않는다고 모리스는 말하지만 그가 촬영한 영상에 매혹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아름다울 작정 없이 아름다운 많은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화산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아마도, 지구가 매 순간 숨쉬며 살아 있음을 피부 화상을 입으며 실감한다는 것. 내 의지가 아니라 화산이 보여주는 만큼 보고 허락하는 만큼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지각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 생애가 얼마나 짧고 보잘것없는지를 감지한다는 것일 테다. 화산과 쓰나미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니까.

자연이 주는 ‘아주 커다란 것의 경험’은 어째서 사람을 절망하게 하기보다는 겸허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걸까? 우리가 유일하게 평등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일까? 서로를 빙글빙글 돌며 싸우길 반복하다가 밤하늘의 별빛을 올려다볼 때에만 비로소 고요해지는 것처럼?

무수한 비극이 연달아 전해지던 연말연시는 태양 활동기가 극대기가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극지방에서는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커다란 오로라가 펼쳐졌다. 태양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때, 지구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끓을 때, 지구의 신참내기인 인간이 손바닥만 한 진실을 가지고 그 많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 언제나 내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전에는 자연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한가로워 보였다. 요즘은 절박해보인다.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자 하는 절박함. 화산을 사랑한 사람들은 인간 대신 화산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우리를 보호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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