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복희는 우리나라에 미니스커트를 처음 알린 장본인이다. 1967년 그가 대중 앞에 다리가 훤히 드러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는 곧 여성들 사이에서 너도나도 따라 하는 폭발적인 대유행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다리를 내놓은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치마는 갈수록 짧아졌고 속옷만 겨우 가리는 초미니 스커트까지 등장하자 급기야 정부는 줄자로 치마 길이를 재는 단속에 나섰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46년에 태어난 윤복희는 5살의 나이에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데뷔했다. 그는 1963년 워커힐 극장 개관 무대에 특별 초청된 루이 암스트롱 앞에서 노래 실력을 뽐낸 후 그의 권유에 의해 세계 각지로 무대를 넓혔다. 그는 필리핀과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미국 등 전 세계에서 활약했다. 대표곡으로 MBC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도 열창한 ‘여러분’이 있다. ‘여러분’은 당시 싱어송라이터였던 친오빠 윤향기가 윤복희를 위해 만든 곡으로 1979년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윤복희는 1968년 22살의 나이에 7살 연상의 가수 유주용과 결혼했다. 유주용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서울대 물리학과를 중퇴한 수재였다. 두 사람은 윤복희가 20살 때 처음 만났는데 결혼 과정이 매우 놀랍다.
두 사람의 약혼식은 윤복희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방송 도중에 이뤄졌다. 당시 TBC에서 윤복희 특집 콘서트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게스트로 유주용이 나왔고 진행자가 두 사람을 무대 중앙으로 부른 뒤 약혼식을 진행했다. 윤복희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약혼 사실은 이미 전국으로 퍼진 상황이었다. 언론사에서는 일제히 두 사람의 약혼과 결혼 보도를 터트렸다. 이 일을 계기로 윤복희는 일사천리로 유주용과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렇게 윤복희의 삶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 걷는 듯했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일찍 연예계에 발을 들였던 윤복희는 결혼 후 전업주부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윤복희의 재능이 자신보다 탁월하다고 판단한 유주용은 오히려 자신의 가수 활동을 접고 윤복희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이에 크게 실망한 윤복희는 점차 결혼에 회의를 느꼈고 두 사람은 성격과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결국 7년 뒤인 1975년, 부부는 이혼을 결정했다. 그 중심에는 당대 최고의 남자 가수 남진이 있었다. 남진이 인터뷰에서 윤복희를 좋아한다고 한 발언이 “저는 윤복희 씨를 사랑합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회 되며 둘 사이를 의심하는 스캔들이 터졌다. 이에 유주용은 신문을 들이밀며 윤복희에게 따졌고 이 사건으로 윤복희는 이혼 도장을 찍은 후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귀국 후 1년 만에 스캔들 상대였던 남진과 재혼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윤복희가 전남편 유주용에게 과시하기 위해 남진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남진의 귀에 들어간 것. 이에 ‘남진이 윤복희를 폭행했다, 윤복희가 집에서 쫓겨났다’ 등의 각종 루머가 돌며 큰 파장이 일었다. 끝내 윤복희는 3년 만에 또다시 파경을 맞는다.
훗날 윤복희는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남진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고 지극히 헌신적이었다고 말하며 문제는 자신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남진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닌, 남진과의 사이를 의심했던 전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죄책감 때문에 전 재산을 남진에게 모두 주고 집을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남진의 순진성을 이용했다면서 남진에게 평생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전남편 유주용이 재결합을 제안했지만 윤복희는 자신이 두 남자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윤복희는 2번의 결혼과 이혼 끝에 79세인 현재 홀로인 삶을 살고 있다.

다사다난한 인생길을 걸어온 그가 최근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6일 연예·출판계에 따르면, 윤복희는 최근 출간된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의 신간 '케이컬처 시대의 아티스트 케어'에 게재된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본인 건강 상태를 고백했다.
윤복희는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원래부터 한쪽 눈이 잘 안 보였는데 근래 완전히 실명했다고 전했다. 또한 다른 쪽 눈마저 시력을 잃고 있어 조만간 두 눈이 다 안 보이게 될 수 있다고 해 충격을 안겼다. 윤복희는 해당 질환이 황반변성이라고 밝히며 여섯 차례나 주사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황반변성은 눈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부에 변화가 생겨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유전적 원인인 가족력과 흡연 습관, 빛에 의한 손상들로 인해 발생하며 현재까지 완전한 치료법은 없는 상태다.
한편 윤복희는 최근 후배들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어디에도 묻히고 싶지 않다면서 “죽으면 화장해서 그 가루를 여러 바다에 조금씩 나눠서 뿌려 달라.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사랑하는 넓고 푸른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고 한다.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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