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스타를 직접 만나다니 너무 신기해요!"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 포워드 홍유순)
"저 팬이에요. 코트 누비는 모습에 반했어요!" (여자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
재일동포 스포츠 스타인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3·경북체육회)와 여자 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 포워드 홍유순(20)이 을사년 새해를 앞두고 만났다. 허미미는 2024 파리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홍유순은 올해 여자농구 신인왕을 예약한 특급 유망주다. 먼저 손을 내민 건 홍유순 쪽. 자신의 롤 모델인 허미미를 홈 경기(18일) 시투자로 초대했다. 학업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허미미는 지난 17일 귀국해 홍유순이 훈련하는 인천의 신한은행 훈련장을 찾았다. 두 선수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어색함도 잠시뿐, 두 사람은 금세 친자매처럼 깔깔대며 수다를 떨었다. 설을 앞두고 한복 차림으로 촬영한 이들은 "한국 전통 의상을 난생처음 입어본다"며 좋아했다. 서로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게 영락없는 자매 같다. 허미미는 "나는 쉴 새 없이 얘기하는 편인데, (홍)유순이가 맞장구 쳐주는 쪽이라 '케미'가 좋다. 동생 미오랑 유순이가 동갑이라 더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홍유순은 "미미 언니 경력이 워낙 화려해 만남을 앞두고 긴장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얌전해 보이는 면도 있는데, 알고 보면 나도 언니 못지않은 수다쟁이"라고 재치있게 받았다.
허미미는 한국 스포츠계에서 성공한 대표적 재일동포 사례다. 원래 그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유도 유망주였다. 하지만 "손녀가 태극마크를 달았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에 따라 2022년 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 한국에 왔다. 한일 이중국적이던 그는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처음엔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 5대손으로 주목받았다. 묵묵히 2년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땀을 쏟은 그는 결국 실력을 입증했다. 지난해 세계유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29년 만에 금메달(여자 57㎏급)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여자 57㎏급)과 동메달(혼성 단체)을 따내며 유도를 넘어 한국 스포츠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홍유순은 허미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중이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그는 큰 키(1m79㎝)에 슛 실력도 뛰어나 학창 시절부터 지역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프로선수를 꿈꾼 그는 농구부가 있는 오사카산업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한국 국적이라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로 뛸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출전 기회도 제한된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한국 행을 결심하고 일본을 떠났다. 부모 모두 한국 국적인 홍유순은 이중국적도 아니었다. 홍유순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해결되는 일이 많았지만, 부모님이 지켜온 나의 뿌리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홍유순은 지난해 8월 여자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신한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시즌(2024~25시즌)부터 펄펄 날고 있다. 지난달 16일 우리은행전에선 4경기 연속 더블더블(득점·도움·리바운드 등 공격 두 부문에서 두 자릿수 기록)을 작성했다. 신인으로는 최다 연속 기록이다. '괴물 센터' 박지수(26·갈라타사라이)의 신인 시절(2016~17시즌) 기록(3경기)마저 갈아치웠다. 홍유순은 "한국에서 차근차근 꿈을 이뤄가는 미미 언니를 동경한다. 나도 언니처럼 언젠가는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에서 뛰고 싶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내년 아시안게임이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다. 홍유순의 고향 오사카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허미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올림픽은커녕 태극마크도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았다. 페이스대로 훈련한 게 성공 비결이다. 나는 학업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훈련해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는데, 유순이는 일찌감치 한국에 자리 잡았으니 나보다 더 일찍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내년 아시안게임은 (일본에서 열려) 한국 대표로 뛰는 재일동포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유순이가 꼭 국가대표로 선발돼 진천선수촌에서 함께 아시안게임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허미미는 소속팀 감독이자 유도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인 김정훈 감독에게 "스포츠를 통해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침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해다. 오는 3월 일본 명문 와세다대(스포츠과학부)를 졸업하는 허미미는 매트 밖에서도 활약을 넓혀갈 생각이다.
허미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한국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면서 재일동포 운동선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이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국 운동선수로서, 경기장 안에서 또 밖에서 한일 양국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을 이어간 그는 "우리 같이 하자"며 홍유순 손을 꽉 잡았다.
인천=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