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직원 구금 사태를 계기로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 임하는 대통령실 내 협상 장기화에 대비하자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서로 계속 다른 조건 하에서 영점을 맞춰가는 관세 협상이기 때문에 딱 어느 지점에서 완료됐다고 하기보다는, 우리 국익이 최대한 보존되고 국익이 관철되는 지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영점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때까지는 어떤 시간, 혹은 목표 지점의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보다 국익 최선의 지점에 가서 뭔가 국민께 알릴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통화에서 “지금 한·미 간 협상은 매번 기준이 달라지고 계속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구금 사태로 협상은 더 늘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의 말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에 대한 부연 과정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현재 상태라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때 정치권에선 23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제80차 유엔(UN)총회를 협상 타결의 마지노선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현재 대통령실은 협상 타결의 시점보다는 결과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의 기류 변화에는 구금 사태 이후 증가한 미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체포·구금 과정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수갑을 찬 모습이 그대로 보도됐고, 지난 12일 귀국한 입을 통해 구금 당시의 열악한 처우 등이 전달됐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조지아주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이란 동맹국을 향한 일종의 분노와 허탈감이 우리 국민 사이에 생겼다”며 “국민 반감이 이만큼 큰데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그걸 무시할 순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의 9~11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5%포인트 하락한 58%로 집계됐는데, 부정 평가 이유로 외교(22%)가 가장 많이 꼽혔다. 한국갤럽은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를 그 이유로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의 3500억 달러 투자 요구가 부당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한국에 ‘일본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런 대미 부정적 인식이 우리 국민 사이에 더 확대됐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요구가 투자금의 사용처를 미국이 정하고 투자국이 원금을 회수한 뒤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일본 모델’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CNBC 방송에 출연해 “일본은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다”며 “한국은 관세를 내든지, 협정을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 사례를 참고해야겠지만,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유엔(UN)총회가 협상의 조기 타결이냐 장기화냐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 가능성 때문이다. 강 대변인은 “다양한 나라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준비 중”이라며 “조율할 필요가 있는 부분도 있고 확정이 돼도 변동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공개 시점까지 말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유엔총회까지 열흘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관세 협상의 급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