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세분이 나란히 손을 잡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9500원짜리 게이샤 라테를 한잔 사서 세분이서 나눠 드시고는 “진짜 맛있네. 또 올게요”라며 가셨다. 그 모습이 정겨웠다.
서울 남산 소월길에 자리잡은 나의 세 평짜리 카페 ‘텐스퀘어 남산’은 손님이 앉을 공간도 마땅찮을 정도로 비좁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7000원으로, 스타벅스(4700원)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도 벌써 이 일대에 ‘인생 커피’라고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 손님이 적지 않다. 9500원짜리 게이샤 라테를 맛보겠다며 지방은 물론 외국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하루 매출 세자릿수를 찍는 날도 적지 않다. 카페 운영비, 직원들 인건비 걱정 않고, 실험적인 신메뉴 개발도 여유있게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벌고 있다.
매일 아침 향긋한 커피를 정성껏 내리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단골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노후. 삭풍이 몰아치던 젊은 시절엔 직장 퇴직 후 이런 삶을 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1963년생인 나는 1988년 스물다섯살에 럭키금성그룹(LG그룹의 전신)의 금성산전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당시엔 대기업 입사는 ‘평생 직장’과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입사 10년도 채 안돼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칼바람에 해직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그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도 아직 젊으니, 금방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다행히 미국 기업에 스카우트가 됐지만, 이곳의 현실은 더 냉혹했다. 구조조정이 수시로 이뤄졌다. 10년 직장생활동안 이직을 10번 했다.
결론은 하나였어요. 현명해지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오롯이 내 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리고 찾아낸 ‘내 것’이 바로 커피였다. 쓴 맛이 지배적인 기존의 원두커피가 아니라, 꽃향과 허브향이 풍부한 스페셜티에서 내 길을 찾았다. 곧바로 ‘늦깎이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커피 맛을 잘 뽑아내는 것과 카페 운영은 또 전혀 다른 영역이다. 커피 맛을 최상급으로 뽑아내기 위해 최고급 원두와 하이엔드급 장비를 쓰면서도 창업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나만의 노하우, 개성있는 인테리어와 콘셉트로 손님의 발길을 사로잡는 나, 안두익만의 노하우를 모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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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2시간 일해도 “자유 얻었다”…호텔 나와 연 9000 버는 셰프
2021년 6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그때. 당시 52세였던 윤태삼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 셰프는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퇴직금에 위로금을 보태 손에 쥔 돈은 3억원 남짓, 은행 대출을 상환하고 나니 남은 건 2억원이었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에게 들어갈 교육비도 한참 남은 상태라 새 직장을 찾아야 했다. 모두가 셰프인 윤씨에게 “레스토랑을 차리라”고 권했지만 그는 평생 갇혀있던 주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그렇게 윤씨가 선택한 길은 개인택시 기사다. 막무가내로 뛰어든 건 아니다. 그의 철저한 준비 과정, 하루 12시간씩 주 5일 운행하며 연 9000만원을 번 방법들을 속속들이 알려드린다.

② 소변 지린 침대에 코 킁킁…‘연봉 1억’ 임원보다 행복하다
“여전히 골프 열심히 치시나 봅니다.”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의 거래처 사장님은 김언일 전 한국콜마 상무와 악수를 하며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김씨의 손바닥에서 딱딱한 굳은살이 느껴진 것이다. “아닙니다. 저 요새 청소합니다. 장비 잡으니 굳은살이 많이 생기네요”라는 김씨의 답변에 사장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들은 다 놀라지만, 연봉 1억원의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1인 청소업자가 된 김씨에겐 다 계획이 있다. 임원 시기에 비해 소득은 반토막이 났지만, 그래도 삶의 만족도는 100점이라는 김씨. 그가 설명하는 ‘청소업의 미래’란 무엇인지, 그가 구상 중인 ‘종합 청소 업체’의 청사진은 어떤 건지 들어보자.
③ “그 호텔 가면 삼시세끼 준다” 월 9000만원 버는 시골 사장님
전자회사 입사 4년차, 30대의 젊은 대리였던 김인석씨는 회사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중국 주재원으로 7년간 생활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사업은 미·중 갈등 등 외부 변수에 요동치니 예측이 불가능했다. 연봉 1억 이상을 받는 파격적 대우였지만 퇴직을 택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고향인 경남 사천에 35억원의 거금을 쏟아부어 호텔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 사람도 없고, 넌 호텔에 대해 모르는데 무모한 도전 아니냐”고 말렸다. 하지만 나는 ‘1박3식’ 콘셉트로 월 매출 9000만원을 올리며 손익분기점(월 4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경험도, 겁도 없이 시작한 호텔 사업이 자리잡기까지 내가 지켰던 원칙들을 소상히 알려드린다.
“별일 안해도 월 300만원 훌쩍”…‘자연인’ 택한 대기업맨 비결
상무님은 다 계획이 있었다…‘월 180만원’ 택배 뛴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