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 “드디어 파면···평등과 연대와 안전을 대세로”

2025-04-04

내란수괴가 드디어 파면되었다. 기쁘다. 그리고 이번에는 판결문에 “그러나”가 지난번처럼 많지 않았다.

경찰이 이미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번에도 지난번 탄핵 이후처럼 사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폭력사태가 벌어져서도 안 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어떤 극단적인 세력도 사상도 이 상황을 구실로 준동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내란수괴 파면과 함께 폭력은 종식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제부터 할 일이 많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에 내란을 일으켰다. 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던 무렵이었다. 그리고 2025년 3월 22일 산불이 영남지역을 휩쓸었다. 전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산불이 일어났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겨울의 초입에 전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산불에 대비할 여력이나 역량이 혹여 줄어들지 않았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동해안 지역의 대형 산불을 이미 22년, 23년에 연달아 겪었다. 겨울은 내란 일으킬 때가 아니라 산불에 대비하고 혹시 모를 사고가 대형 재난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다시는 이런 대형 재난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2025년 영남 산불로 인해 30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천년 고찰이 재가 되었다. 그와 함께 한 해 동안 피땀흘려 농사지었던 사과, 콩, 마늘 등의 농작물도, 가족처럼 돌보았던 가축들도, 꿀을 생산하던 벌도, 산에서 나던 버섯도 모두 산불이 잡아먹었다. 자연재해는 식량재난으로 이어진다. 홍수와 산불 등 자연재해는 식량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파면된 전 대통령의 정권은 식량안보에 대해,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가?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15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생존자 중 한 분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다.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채 10년도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2023년 7월 15일에는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어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7C2216편 참사로 인해 179명이 사망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이렇게 매년 참사와 재해가 일어났다.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노력하기는커녕 평범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만 전 대통령은 거듭해서 증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농민,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은 더욱 무섭고 위험해졌다. 왜냐하면 파면된 전 대통령은 폭력을 포함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상대의 약함과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하게 가능한 존재 방식이라는 잘못된 남성성을 신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의 결과가 2024년 12월 3일의 내란이었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무형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사라졌다. 전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여성가족부 폐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일파만파 퍼져나가며 모든 여성을 위협하고 그중에서도 10대 청소년 여성들이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리고 스토킹, 교제폭력,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모든 연령대의 여성과 그 가족까지 죽이고 위협한다. 한국여성의전화 3월7일자 발표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여성은 15.8시간에 1명씩 발생하며 일면식이 없는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여성은 2일에 1명씩 발생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 최소 181명, 경찰 신고 및 피해자 보호조치 등을 취했음에도 살해된 피해자와 주변인 피해자가 114명이었다.

2024년 분노의 게이지 :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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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런 통계를 내고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여성가족부가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해체되지 않았지만 여성가족부의 수장은 1년째 공석으로 남아 있다. 여자들은 계속 죽는다.

한편 네팔은 2024년 4월 24일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이어 태국은 2025년 1월25일자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대만은 2019년부터 이미 “혼인평권” 즉 평등하게 결혼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전세계적으로 38개국이 동성간의 결혼할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한다.

한국은 어떤가? 평등한 결혼이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인정하기는커녕 퀴어문화축제 개최조차 방해받고 있다.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하고 을지로의 좁고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열려야 했다. 같은 해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반월당역을 종교단체에게 빼앗기고 지하철역으로 한 정거장 더 간 곳으로 장소를 옮겨서 개최되었다.

차별금지법은 18년째 제정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폭행과 폭언을 예사로 당하고 브로커에게 임금을 떼어먹히고 무너져가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타고 싶고 버스로 이동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현했다가 비장애인 지하철 보안관들에게 짐짝처럼 들려나가고 휠체어에서 강제로 분리되어 경찰에 연행된다. 학교성폭력을 공론화한 교사는 공익제보자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게 아니라 부당전보에 항의하며 교육청 앞에서 시위하다 연행당한다. 물론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더욱 폭력적으로, 위협적으로 변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적극적으로 용인하는 자가 국가 수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고공에 올라갔다. 2022년 10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이 불탔다. 그보다 3년 전에 희망퇴직했다가 회사가 불러서 재고용된 노동자들이 다시 해고당했다. 그래서 17명이 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자 본사가 구미시에 공장 철거 승인을 받았다. 2024년 1월 8일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노동자가 철거를 막기 위해 공장 옥상에 올라갔다.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는 아직도 불탄 공장 옥상 위에서 세계 최장기 여성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나섰다. 박문진 지도위원과 함께 2024년 10월에는 부산에서 구미 옵티칼 공장까지 걸었다. 2025년 2월 7일 구미에서 서울 국회까지 다시 ‘희망뚜벅이’를 시작했다. 아니 처음에는 국회까지 가려고 했다.

‘희망뚜벅이’가 걷는 사이에 세종호텔 지부장 고진수 동지가 호텔 앞 지하차로 입구 안내물 위에 올라갔다. 세종호텔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러나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전부 노조 조합원들이었고 이들은 지금까지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세종호텔 측이 ‘경영악화’를 구실로 내세웠기 때문인지 법원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고진수 지부장은 2025년 2월 13일 고공에 오른 뒤에 아침 저녁으로 북을 치며 해고자들의 상황을 알린다. 구미에서 출발한 ‘희망뚜벅이’는 3월 1일 서울에 도착하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명동으로 행진했다. 구미 고공농성장에서 출발한 옵티칼 지회 조합원들은 서울 명동 세종호텔 고공농성장에서 “우리 왔어요” 하고 눈물을 흘렸다.

2025년 3월 18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한화오션 앞 CCTV 첨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본사인 대우조선이 한화오션에 팔렸는데, 이후로 한화오션이 처우개선과 상여금 인상 등에 대한 논의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노동자에 대해 이렇게 경멸과 무시로 일관하는 것도,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재력과 폭력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도, 폭력을 신봉하고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정부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부는 외교력이 없었다. 어떤 나라에는 무작정 굽실거리고 어떤 나라에 대해서는 음해와 모욕을 일삼았다. 외국투자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세금혜택과 공장부지 무료임대 등 온갖 혜택을 받다가 실업자만 양산하고 자기들 멋대로 나가버리는데, 정권은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탄압했다.

내란 이후 지난 123일은 춥고 힘겨운 날들이었다. 그러나 탄핵과 파면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열린 광장에서 평등과 연대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미래의 희망을 한 조각이라도 엿보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옵티칼 지회와 김진숙, 박문진 두 지도위원과 함께 출발한 연대동지들의 ‘희망뚜벅이’가 그랬다. 한 달 동안 하루에 평균 16킬로미터씩 걸으면서 ‘희망뚜벅이’는 성소수자와 여성과 노동자와 모든 약자들이 연대하는 작은 평등세계를 만들어냈다. 거제통영고성지회에 연대하는 ‘말벌 동지’들이 한화오션 앞 ‘무지개 조선소’에서 만든 ‘연대투쟁호’는 그런 평등과 연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 이제 평등과 연대와 안전을 대세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파면 이후의 세계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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