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김범석 의장 사과 이어 피해 보상안 발표…여론 반전엔 ‘역부족’
오너 중심 기업 문화, 문제시 ‘총수’ 직접 사과와 ‘통 큰 보상’이 관례로
‘글로벌 스탠다드’는 권한·책임 분리…“쿠팡에 대한 요구 되짚어 봐야”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쿠팡이 김범석 의장 명의의 사과와 함께 조 단위의 파격적인 보상안을 내놨지만, 국내 시장의 온도는 여전히 영하권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쿠팡의 대응이 잘못됐다기보다, 한국 특유의 '총수 책임 문화'와 철저히 법적 권한을 분리하는 '글로벌 리스크 관리' 방식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370만 명의 정보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글로벌 기업 쿠팡과 한국적 정서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전날 김범석 의장 명의 사과문을 낸 데 이어 이날 1인당 5만 원 규모 피해 보상안을 발표했다. 쿠팡 관련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구매이용권 형식으로, 지급 대상은 지난 11월 말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370만 계정이다. 모든 피해자가 구매이용권을 온전히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보상액 규모는 1조685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김 의장의 사과와 고객 보상안에도 여론이 반전되진 않고 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알려진 뒤 국회의 긴급 현안 질의와 청문회에서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의장의 사과문은 사태가 터지고 29일이 지난 뒤 발표됐다. 김 의장은 사과문과 함께 오는 30일과 31일에 열리는 국회 연석 청문회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보상안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쿠팡이 지급할 예정인 구매이용권은 쿠팡 전 상품과 배달앱 쿠팡이츠에서 각각 5000원, 여행상품·명품 판매몰인 쿠팡트래블과 알럭스에서 각각 2만 원으로 구성됐다. 여행이나 명품 구매 계획이 없다면 보상 금액은 1만 원으로 제한된다. 쿠팡과 쿠팡이츠만 분리할 경우 총 보상액 규모는 3370억 원 규모로 줄어든다.

김 의장의 사과와 보상안 발표에도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쿠팡의 대응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너 일가 중심 대기업 문화가 익숙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문제 발생시 최종결정권자인 그룹 총수 등이 직접 공개석상에서 사과하는 것을 요구한다. 총수가 나서야 내놓을 수 있는 ‘통 큰 보상’도 자연스럽게 여긴다.
실제로 앞서 유심 해킹 사고가 발생했던 SKT의 경우, 해킹 사실을 외부에 발표한 지 15일 만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SKT는 이어 모든 가입자에게 1개월치 통신요금 50% 감면과 연말까지 각종 할인 혜택을 선보이는 보상안을 마련했다. SKT 대표이사를 넘어 그룹 총수가 나서 책임을 진 모양새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룹 총수가 기업 문제에 사과하는 구조가 자연스러운 형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기업의 법적 최고 책임자인 등기 대표이사를 넘어 기업이 속한 그룹 오너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기업을 오너 중심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화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경우 각국 현지법인의 대표이사가 현지의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오히려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깝다고 말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각국마다 상이한 법률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위해 권한과 책임을 명백히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쿠팡 사태에 빗대어 보면 박대준 전 쿠팡 대표가 사과한 뒤에도 김범석 쿠팡 의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요구가 된다. 법적으로 쿠팡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글로벌 본사이고, 김 의장은 문제가 발생한 쿠팡 한국 법인 대표가 아닌 글로벌 본사 의장이기 때문이다. 쿠팡과 김 의장이 사태의 심각성에도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한 것도 이처럼 법적 책임을 분리하는 원칙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해석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법인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글로벌 본사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차별적 대응으로 여겨질 수 있고, 한국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있다”면서 “쿠팡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보다 ‘기업 창피 주기’로 사태를 끌고 가는 것은 오히려 우리나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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