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옥찬 심리상담사ㅣ넷플릭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연출: 이병헌, 안길호/극본: 김은숙/출연: 김우빈, 수지, 안은진, 노상현, 고규필, 이주영 등)은 13부작으로 올 추석 연휴에 공개된 판타지·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지니(김우빈 분)는 ‘알라딘과 요술램프’로 친숙한 램프의 요정 지니가 색다르게 재창조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가영(수지 분)이 램프의 요정 지니의 주인이 되어 세 가지 소원을 비는 이야기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지니(김우빈 분)는 감정이 과하고, 감정의 기복도 크다. 그리고 매우 흥분한 아이처럼 날뛰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반면에 기가영은 감정이 결여되어 감정이 얼굴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가영은 동네 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 부족, 죄책감 결여, 자기중심성 등이다. 지니와 가영은 감정의 표현 측면에서 보면 정반대의 캐릭터다.
추석 연휴를 시작하면서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전편이 공개되었다. 한국에서 추석 하면 '귀성'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추석에는 가족이 있는 고향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변화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추석과 귀성의 연결고리는 많이 약해졌다. 이번처럼 긴 추석 연휴에는 고속도로 상황보다는 오히려 인천 국제공항의 출국장 상황이 뉴스거리가 되니까 말이다.
추석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명절이다. 한국은 '우리'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집단주의 문화가 특징이다. 그래서 영어 'My mom'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내 엄마'보다는 '우리 엄마'가 자연스럽다. '우리'는 단순히 문법적으로 복수대명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속과 친밀함과 소유의 개념을 포함한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처럼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자아개념이 독립적 자아(independent self)보다는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자아(interdependent self)가 적절하다.
집단주의 문화의 긍정적인 면은 추석 전통 놀이인 ‘강강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강술래의 유래 중에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속이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계책이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라는 집단 소속감은 집단차원의 의미부여를 가능하게 하고, 함께 모여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집단주의적 규범이 방역수칙 준수와 같은 공중위기 대응에서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집단주의 문화의 부정적인 면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기가영은 집단주의 문화 덕분에 묻지마 살인자처럼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기가영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단명이다. 사람들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용어가 더 친숙할 것 같다. 왜냐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특이하고 섬뜩한 캐릭터로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일어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후회나 죄책감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묻지마 살인자들처럼 말이다.
드라마 첫 회에서 기가영은 친엄마를 만나러 중동으로 간다. 친엄마는 어린 가영을 외할머니 오판금(김미경 분)에게 맡기고, 정확히는 가영을 버리고 중동으로 이주했다.
가영의 엄마는 딸을 만나서 "네가 친절을 배워? 공포가 뭔지 안다고? 그랬으면 내가 널 버렸을까"라고 말한다. 아마도 가영의 엄마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어린 가영을 감당하기 무서워서 떠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가영에게는 램프의 요정 지니보다 더 큰 선물 같은 존재이자 삶의 룰인 외할머니 오판금이 있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기가영은 엄마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가르친 적도 없으면서"라고 항변한다.
심리상담사로서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상담과 교육이 될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만 18세 이상 성인에게 내리는 진단명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성격이 형성되어 가는 단계가 아니라 성격이 완성되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성격을 변화시키는 상담적·교육적 개입은 어릴수록 효과가 크다. 성인기에는 성격을 변화시키기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인 사람들이 스스로 상담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범죄자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경우는 많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가영의 담임 선생님이 가영의 외할머니 오판금에게 "가영이 같은 경우에는 가르치신다고 되는 게 아니고요"라고 알려준다. 이에 오판금은 "해보지도 않고 와예, 다 안된다 싸도 지는 포기 몬 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가영이를 포기하지 않고 독하게 가르친다. 오판금은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공감능력이 결여된 가영이를 타인의 감정에 대해 인지적으로 반복하여 학습시킨다.
기가영은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리기 위한 조건인 15세 이전에 나타나는 품행장애의 모습도 보인다. 동물들을 폭력적으로 죽이려고 한다. 가영이 할머니의 가르침만으로는 한계가 생긴다. 이때 동네 사람들이 함께 가영이를 가르친다. 동네 사람들이 가영이를 가르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동물을 죽이려는 가영이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고 화를 내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한다. 그리고 가영이의 품행장애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으로 전이하도록 돕는다.
동네 사람들은 가영이를 어릴 적부터 지켜보고 함께 가르쳤다. 동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가영이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키웠다. 그리고 가영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쟈는 사람은 안 죽여. 쟈는 여그 동네에서 다들 같이 키웠응게... 그렇게 그 쬐깐한 악마를 기냥 온 동네가 나서서 키웠응게."
이것이 집단주의 문화의 힘이다. 한 사람의 인성은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추석의 강강술래처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중요한 이유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