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를 쓸 수 있는 시기가 내년 초로 가시화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전파연구원은 지난달 15일 스타링크가 주파수 혼신 없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행정예고를 공고했다. 관련 행정절차를 거쳐 내년 1~2월이면 스페이스X가 국내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지게 된다.
국토 대부분에 통신망이 깔려 있어 인터넷 이용이 어렵지 않은 한국에선 당장 스타링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차’로 불리는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서비스가 본격화되는 6G 시대에는 이러한 위성통신의 쓰임이 크게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저궤도 위성은 지상에서 300~1500㎞ 사이의 공간을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여 하루 11~15회 지구를 돈다. 기존 통신위성은 정지궤도(3만6000㎞)에 주로 있어 지상국과 신호를 주고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안테나도 켜야 한다. 반면 저궤도 통신위성은 지상과 가깝다보니 통신 속도도 빠르고 안테나도 작게 만들 수 있어 비용이 절감된다.
문제는 저궤도 위성의 전파 도달 영역이 고궤도보다 좁다는 것이다. 스타링크는 ‘벌떼 위성’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저궤도 군집위성으로 촘촘한 통신망을 구축해 막힘 없는 위성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위력을 과시한 스타링크는 이미 위성을 7000기 띄웠고, 3년 뒤 1만2000기까지 늘릴 계획이다.
미국, 호주처럼 국토가 광활한 나라에선 망구축 비용이 크기 때문에 위성통신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재 저궤도 위성통신의 쓸모는 오지, 해양, 항공우주 분야 세 가지로 꼽힌다. 한국의 경우 통신 연결이 약한 음영 지역이 거의 없다보니 당장의 수요는 대부분 해양으로 봐야 한다.
기존 정지궤도 위성 안테나는 지름이 1m에 달하는데 저궤도 위성 안테나는 A4 용지 크기라고 한다. 소형 레저선, 낚시선 등에서 활용하기 좋다. 또한 외양선박의 경우 인터넷 이용이 제한적인데, 5G보단 느리더라도 동영상 스트리밍을 시청할 수 있는 수준은 되기 때문에 선원 복지 차원에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고객이 굳이 수십만원을 들여 위성 서비스를 이용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당장은 해양 선박이 주 수요가 되고, 여기에 기내 와이파이와 같은 항공 서비스가 함께 가게 될 것”이라며 “향후 확대될 저궤도 위성서비스 시장 선점 효과를 위해 통신사들이 스타링크와 제휴를 맺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링크는 저궤도 위성통신과 휴대전화 단말기가 직접 교신하는 ‘다이렉트 투 셀(Direct to Cell)’ 통신이 상용화되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이스X는 올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전송 서비스로 시작해 내년에는 음성통화와 인터넷 데이터 사용, 사물인터넷(IoT) 연결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에서 스타링크는 SK텔링크, KT SAT, LG유플러스를 통해 서비스를 판매하게 된다. 주파수를 수신하는 단말기 가격은 349달러(약 48만원)이며, 월 이용료는 주거용 120달러(약 16만5000원)부터이다. 한국에선 내년 2월 중순 서비스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6G 시대 ‘경계’를 넘어
저궤도 위성통신은 당분간 기존 통신 서비스의 보완 역할에 그치겠지만, 중장기적인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상·해상·공중을 잇는 초공간 통신을 구현하려는 6G에선 지상망과 위성망의 결합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UAM은 다양한 교통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하늘, 바다, 해안을 오가며 날아다니게 된다. 지상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계 지점에서 통신 연결이 짧은 시간만 끊어져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연시간이 짧은 저궤도 위성통신은 지상망이 커버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매끄러운 연결을 뒷받침할 수 있다.
KT SAT 관계자는 “더 많은 데이터를 끊김 없이 전달해야 하는 6G 시대에는 기존 지상망만으로는 인공지능(AI) 등 대규모 데이터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통신 수요 증가에 따라 위성통신 필요성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저궤도 위성통신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면 통신산업 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저궤도 위성통신 정책 이슈 보고서를 통해 “비용 측면에서 위성통신의 경쟁력이 매우 강력한데 운용 인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 구조인 데다 발사체의 재활용을 통한 원가 경쟁력에서도 격차가 크다”며 “자율주행 자동차 혹은 커넥티드카와 같은 모빌리티 분야를 포함하는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한국판 스타링크’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5월 삼수 끝에 ‘저궤도 위성통신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것이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3200억원이 투입되는데, 저궤도 위성통신 핵심 기술을 자립화하고 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을 돕는 내용이 골자다. 저궤도 통신위성은 2기를 발사할 계획이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 수천대씩 띄우는 스페이스X, 아마존 카이퍼 시스템즈 등 글로벌 기업과는 격차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저궤도 위성 없이 6G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자체적인 위성체 확보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한국 단독으로 어렵다면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일본 등과 위성체 확보에 함께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