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세일(35)이 지난 1월 애틀랜타와 2년 38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애틀랜타가 가능성 낮은 도박을 했다고 생각했다. 끝도 없는 부상으로 지난 5년 동안 300이닝도 못 던졌던 30대 중반 노장이, 온전히 한 시즌을 소화할 수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 도박이 성공했다. 세일이 2024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로 21일 선정됐다. 1위표 30장 중 26표를 쓸어 담았다. 생애 첫 사이영상이다. 올해 세일은 18승 3패에 평균자책점 2.38, 225탈삼진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최고 투수의 자리를 예약했다.
세일의 2024년이 위대한 건 그저 역대 35세 이후에 생애 첫 사이영상을 차지한 역대 6번째 투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5세부터 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세일은 30세 되던 2019년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타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졌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다. 보스턴 시절 구단 관계자가 “누군가 세일의 저주 인형을 가지고 있다”고 푸념할 만큼 불운했다.
세일의 극적인 부활 비결은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다. 아내의 권유로 식단부터 바꿨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글루텐을 끊었다. 가공식품을 피했고, 비타민을 풍부하게 섭취했다. 세일은 시즌 중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에는 비행기에서 감자칩 20봉지를 먹었고, 매주 몇 번씩 맥도날드와 타코벨을 갔다. 몇 년간 계속 부상 문제를 겪으면서 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강한 세일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평균 152㎞ 구속을 회복했고, 슬라이더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10년 전 18.4%에 불과했던 슬라이더 비율을 40.3%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잡은 225개의 삼진 중 124개를 슬라이더로 잡아내는 동안 홈런은 단 1개만 맞았다.
세일은 올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51번으로 바꿨다.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 랜디 존슨의 등 번호다. 세일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외하고 존슨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투수”라며 “그를 기리기 위해 번호를 바꿨다. 올해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시즌이다. 역대 최고 왼손 투수의 번호를 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세일은 “(과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이 순간을 더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마운드 위에서 던지고, 성공을 거두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겪고 나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