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중심에 두고 한 템포 천천히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보는 것.
노인복지를 실현해 가기 위한 하나의 의미 있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건강한 공동체를 지켜내는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처럼.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한 며칠 전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 학교에 불을 밝히고 계신 총장님께서 마침 티타임을 요청하셨다. 평생을 정갈하고 단정하신 모습으로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시는, 그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그분의 철저한 루틴은 항상 말보다 책임이 먼저여야 함을 보여준다.
그날 총장님께서 건네주신 책 속에는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를 비유로 한 경영자의 리더십을 다룬 내용이 실려 있었다. 사막을 지날 때 코끼리 무리는 가장 약한 개체를 한가운데에 두고 천천히 이동한다는 이야기였다.
속도가 느려질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강한 개체들이 바깥을 둘러싸 끝까지 함께 간다는 단순한 스토리가 꽤나 뭉클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코끼리들이 집단의 생존이 약자의 낙오 위에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노인 간호를 전공해 온 나로서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약한 코끼리는 바로 사회적 약자로 취급되는 노인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너무 빠르게 걷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때로는 나조차도 숨이 차는데, 하물며 느리고 뒤처지기 쉬운 노인은 어떻겠나?
속도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고 생산성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중심축을 이루는 집단이 오히려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노인 돌봄과 사회적 비용이라는 이름으로만 끝없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사실 이미 오래오래 걸어온 사람들이다. 우리사회가 겪어왔던 수많은 사회적 문화적 변곡점들마다 그들이 축적해 온 경험들은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의 자산이다. 어떤 때에 사회가 무너졌고 어떤 선택으로 다시 일어섰는지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세대이다. 비록 느리고 약하지만, 그 느림 속에 방향을 아는 지혜가 담겨 있고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 균형 감각이 스며 있다. 어쩌면 사회가 길을 잃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온 세대일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에서 가장 약한 개체가 이동의 기준이 되듯, 노인 역시 우리 사회에서 점점 중심에 위치할 필요가 있다. 노인을 특별히 우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노인을 단순한 지원과 보호의 대상, 의료와 복지비용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부담으로 바라보는 단편적 시각을 걷어내 보자는 제안이다. 그들의 속도를 관찰하고, 잔존 기능과 역량을 살려 우리 사회 이동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설계를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물론 초고령사회를 대비하고 노인의 삶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시행 이후 오늘날의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까지 정책적인 노력과 제도의 개선이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205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존의 연장선에 머무르지 않는 더욱 더 혁신적인 상상과 실천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힘 있는 소수가 느린 걸음을 기준으로 방향을 조율할 수 있을 때, 공동체는 비로소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여주 <화성의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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