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그냥’이라 말하고 ‘야옹’이라 번역하기

2025-04-13

이 시의 언술 방식을, 내용을, 리듬을, 허공에 착지하려는 자세를, 공중에 매달린 ‘그냥’이라는 새장을 보라. 이게 무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에게 청하고 싶다. 그냥이요, 그냥 소리 내서 낭독해보세요. ‘그냥’이라는 고양이가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려 할 때를 다들 아시잖아요? 대화 중에 투명한 방패막이 손에 들릴 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울 때 ‘그냥’은 하품하는 고양이처럼 입 밖으로 나온다.

영어의 ‘just’로는 그 함의를 차마 다 담기 어려운 ‘그냥’의 세계가 있다. 눈동자가 “불안한 세로”인 그냥, “그늘 잠이나 풋잠”을 즐기는 그냥, “발톱을 부끄러워하는” 그냥, 길고양이에게 수염을 붙들린 그냥. 속을 알 수 없는 고양이와 닮은 ‘그냥’의 매력이 있다. ‘그냥’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작은 선언이다. 이유는 없지만 이유가 많기도 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뭘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 “그냥”은 앞모습과 뒷모습이 같다.

송재학 시인의 시는 묘하다. 우스운 이야기인가 싶어서 보면 무서운 얘기이고 작은 얘기인가 싶어서 보면 커다란 얘기다. 우는 사람 이야기인가 싶어서 보면 눈물 대신 모래알을 흘리는 사람이 만져진다. 한편의 시에도 모퉁이가 여럿이고, 모퉁이를 여러번 돌 때마다 사유의 전복을 겪게 만든다. 이렇게 간다고? 여기까지 이런 색깔로 간다고? 통상적인 것이라고는 없어 놀랍다. 이 놀라움은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하는데 ‘낯선 불편’이야말로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이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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