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국토부 협박" 패널도 준비했다…3년 전 회의록 보니

2024-11-17

“후보 토론회에서는 일부 허위 표현이 있어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지 않은 대법원 판례가 있다. 국정감사에서 도지사가 답변한 것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돼야 한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 주장)

“토론회 발언 법리는 이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발언에 고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게 부당한 경우가 아니다.”(15일 서울중앙지법 판결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이 ‘백현동 협박’ 발언을 놓고 막판까지 의지했던 2020년 대법원 판례가 배척된 순간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 한성진) 재판부는 이 대표가 2021년 10월 20일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박근혜 정부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에 한국식품연구원의 백현동 부지를 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용도변경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발언을 허위사실공표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내렸다.

이 대표가 동아줄로 잡으려 했던 판례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자 TV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 없다” 발언해 2심 수원고법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2019년 9월)을 받았다가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7대 5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던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 다수의견은 “토론은 미리 준비하는 연설과 달리 공방이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뤄지므로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일부 허위의 표현을 하더라도 자유로운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무죄로 봤다.

이 대표 측은 이에 기대며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의 질문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답변, 의원의 재질문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뤄지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에서 TV토론회나 국정감사나 비슷하단 논리를 폈다.

“사전 준비·사전 질의”…‘즉흥성’ 있는 토론회와 달리 본 法

재판부는 그러나 ▶문제의 발언 이전부터 이 대표는 백현동 의혹에 대응해왔으며 ▶국정감사일 전에 같은 당 문진석 의원이 사전 질의를 줬고 ▶이 대표는 발언에 쓸 패널까지 미리 준비해 왔다는 점을 짚었다. 백현동 용도변경 특혜 의혹이 불거진 건 약 한 달 전이었다.

실제 국감 당일 국토위 회의록을 보면 문 의원이 “어제 서울시 국감장에서 오세훈 시장과 국민의힘이 제기한 백현동 관련 의혹 제기가 날조됐다는 것을 체크해 보겠다”고 운을 뗀 뒤 “지사님, 이 땅 수의계약한 주체가 어딘지 아십니까?” “맞습니다. 이 땅은 한국식품연구원이 민간사업자와 수의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지사에게 특혜라고 묻는 겁니까?”라며 이 대표에게 해명 기회를 주는 내용이 나온다.

이어 문 의원 스스로 “누가 성남시에 용도변경을 요청했는지 아느냐”며 “박근혜 정부 국토부가 요청했다. 이것을 이 지사의 특혜라고 묻는 것은 국민의힘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희국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우리가 대답할까요?”하자 문 의원이 “아니요, 대답 안 해도 된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하려면 박근혜 정부 국토부와 식품연구원에 물어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문제의 ‘협박’ 발언은 그 다음 나왔다. 문 의원이 “지사님, 백현동 사업에 특혜를 줬다고 생각하십니까?” 묻자 이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자세히 설명 드려도 될까요?”라며 준비한 패널을 들어 보인다. 그러면서 “국토부장관이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요구하면 지자체장은 반영해야 된다는 의무조항을 만들어 놨다. 만약에 안 해 주면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해서”라고 말한 것이다.

재판부는 ▶식품연구원 부지는 혁신도시법상 의무조항이 적용되는 경우가 아니었고 ▶성남시 문의에 국토부 측도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회신한 점 ▶성남시 공무원들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는 ‘압박 내지 협박한 사실이 없다’‘못 들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점 등을 들어 ‘허위’로 판단했다.

“당선 목적 아냐” 주장도 배척…페이스북에 발목 잡혔나

재판부는 “도지사로서 국회의원 국감 질문에 답변한 것이지 대선 후보로서 발언이 아니기 때문에 ‘당선 목적’ 허위사실공표가 아니다”란 이 대표 측 주장도 배척했다. 이 대표가 국감 이후 페이스북에 “‘토건세력 특혜 폭탄 설계자’는 국민의힘 전신 정권들과 관계자들임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국민들도 국민의힘이 범죄자 도둑이고, 이재명은 청렴했음을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쓴 글 등을 두루 인용하면서다.

재판부는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일 때 한 거라 ‘경기도 국정감사’와는 무관했단 점도 짚었다. 결국 “대선 후보자로서 국정감사를 지지율 상승의 기회로 삼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이 사건 발언을 한 것”이란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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