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쪽 분량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에는 ‘선거인’ 또는 ‘일반 선거인’이라는 표현이 39번 등장한다. 이 대표 발언이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지 따질 때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면서다. 한 표를 행사하는 일반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이는 대법원이 2003년 전원합의체 판례로 확립한 기준이다. “선거인이 접하는 통상 방법을 전제로 표현의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 의미, 문구의 연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法 “‘김문기 모른다’맥락, 골프·조작 단어 뜻, 호응관계 등 봐야”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 한성진)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유죄로 인정한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내 조작한 거죠” 발언에 대해 “‘골프 발언’의 의미는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체적인 취지는 ‘마치 피고인이 골프를 친 것처럼 단체사진을 4명의 사진으로 조작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골프’ ‘조작’ 이라는 단어가 듣는 사람에게 남기는 인상의 정도,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부분과 ‘조작한 거죠’ 부분의 호응관계 등을 보태어 보면, 이 ‘골프 발언’을 듣는 일반 선거인으로서는 피고인이 김문기와 함께 해외 골프를 치지 않았다, 사진과 함께 제기된 의혹이 조작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하면서다.
또 “사진이 찍힌 날과 골프를 친 날은 다른 날이지만, 일반 선거인은 이를 알지 못해 ‘사진이 찍힌 당일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해외 골프에 동반했지만 ‘하급직원’이기 때문에 몰랐다고 발언하는 것은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후보자 선출 직후부터 불거진 대장동 특혜 의혹과 이어진 수사에서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본부장의 사망에 이어 김문기 전 개발1처장의 사망까지 더해지며 일반 선거인의 관심이 증폭됐다는 배경사실도 인정했다.
이어 “피고인의 발언들은 전체적으로 ‘김문기를 몰랐다’는 맥락에서 한 것인데, 해외 출장 동행은 인정하면서 ‘골프 발언’을 하는 것을 듣는 일반 선거인은 이를 ‘피고인이 김문기와 해외골프를 함께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며 “공직자 해외출장 중 공식 일정 외에 골프를 친 것에 대한 발언은 후보자의 자질·성품·능력 등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法 “일반 선거인 관점에서 들으면…” 李 “발언 짜깁기” 주장 배척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한 ‘백현동 협박 발언’ 역시 재판부는 ‘일반 선거인의 관점’을 기준으로 유죄로 봤다. 이 대표는 “긴 시간에 걸친 발언 중 일부를 임의로 발췌하고 재배치해, 맥락을 왜곡하고 짜깁기 편집한 뒤 실제 발언과 다른 내용으로 기소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표 당시 발언은 일관되게 ‘국토부 요구에 따라 불가피하게 용도변경을 했다’는 취지였고 ▶‘국토부 협박’ 단어는 당시 국감에서 처음 언급돼 선거인에게 큰 인상을 주는 말이었으며 ▶일반인들이 보기엔 ‘국토부가 협박해서 억지로 용도변경을 하게 됐다’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봤다.
법원은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보건대, 이 발언은 ‘국토부의 요구를 받고 불가피하게 용도지역을 변경했고, 안 해줄 경우 직무유기를 문제삼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라는 의미로 판단된다”며 “백현동 부지에 관한 발언이 아닌 부분을 짜깁기해 편집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