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임현철 주EU 관세관) 그간 딱딱한 법령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고, 독자분들의 피로도도 높아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번편에서는 조금 쉬어가자는 의미에서 EU 관세정책은 어느기관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EU 기능조약(TFEU) 제3조는 관세에 대해서는 EU가 ‘배타적 권한’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가 ‘배타적 권한’을 행사한다는 의미는, 각 회원국이 아닌 EU 기관이 법령제정, 정책 개발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회원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법령과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유의할 것은 ‘배타적 권한’이라고 표현하지만, 법령제정과 정책 개발에 있어 개별 회원국의 입장이 무시된다는 의미에서의 ‘배타적 권한’이 아니라, 법령이나 정책 개발을 개별 회원국이 아닌, EU 기관에서 관장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배타적 권한’과 관련된 기관으로는 EU 삼대장으로 불리는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 EU 이사회(EU Council),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가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쉽게 말하면 국가행정부로 보면 된다. EU 집행위원장이 수반이고, 집행위원장을 정점으로 각부 장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 26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집행위원 아래로, 41개의 총국(Directorate-General)이 각자 고유한 정책업무를 수행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배타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법령을 입안하고, 정책을 만들며, 발효된 법령을 집행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EU 집행위원회에서 일하는 직원은 EU 공무원으로 EU의 이익을 대변한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EU를 위해 일한다는 점은 같다. EU 공무원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한 Regulation No 31(EEC), 11(EAEC) 제11조에 보면 EU 공무원은 오로지 EU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일 자국의 이익에 관심이 더 많다면, 집행위원회가 아니라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EU 이사회나 유럽의회에서 일해야 한다.
EU 이사회는 각국의 대표로 구성되어, EU 차원의 법령 제정, 정책 개발에 있어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27개 회원국에서 뽑힌 의원으로 구성된 유럽의회 역시, 이사회와 함께 EU 집행위원회의 법률안, 예산안에 대한 동의권 등, EU 집행위원회를 견제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만든 법안은 EU 이사회와 의회의 조정과 동의를 거쳐 정식효력을 갖춘 법령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조정과 동의의 과정에서 각 회원국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법령과 정책에 반영된다. EU 관세법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된 것이다.
말이 좋아 조정과 동의이지, 실제로는 수많은 의견 교환과 협상이 반복되는 고된 작업이다.
법령 제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개정작업도 제정작업과 마찬가지로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 조정, 합의도출, 이사회와 의회의 동의절차 등 여러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서는 2028년 발효를 목표로 EU 관세법 개정에 나서고 있으나, 말처럼 쉽지 않는것이 EU의 현실이다.
법 개정이 어렵다보니, 결국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위임법령(Delegated Regulation)과 이행법령(Implementing Regulation)이다.
이 두가지 법령은 집행위원회에서 만들지만, 발효에 있어, 이사회와 의회의 간섭이 덜하다. 물론, 이사회와 의회의 견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수준이 법 제·개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이유로 정작 EU 관세법의 중요한 내용은 관세법이 아닌 위임법령과 이행법령에 나와있다. 심지어는 대한민국 관세청의 고시, 훈령 수준의 내용도 위임법령과 이행법령에 규정되어 있어, EU 관세법을 이해하려면 위임법령과 이행법령에 대한 지식이 필수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법령의 양이다. EU 관세법 위임법령과 이행법령은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포인트 9 정도의 작은 글씨로 페이지가 1000페이지를 훌쩍 넘어간다.
여기에 세관 직원들이 알아야하는 모든 절차와 기준들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읽는 것도 어렵지만,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통관사(우리의 관세사와 같다)도 다 전문분야가 있어, 그 분야이외의 것은 물어봐도 모른다고 솔직히 대답한다.
따라서 EU와 수출입 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자기와 관련된 전문 통관사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만 두 번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면에서도 손해가 클 수 있다.
관세청과 국세청이 한몸으로: 조세총국(EU TAXUD)
EU 집행위원회 산하 41개 총국 중 관세관련 업무는 조세총국(Directorate- General Taxation and Customs Union: EU TAXUD)에서 담당한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조세총국은 우리의 관세청과 국세청이 합쳐진 조직으로 관세국(Directorate-Customs), 직접세국(Directorate-Direct Taxation), 간접세국(Directorate-Indirect Taxation), 조세정책국(Directorate-Digital Delivery of Customs & Taxation Policy), 운영지원국(Directorate-Resources & General Affairs) 등 5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EU 관세제도는 관세국에서 관장한다.
관세국은 다시 관세정책과(Customs Policy), 법무과(Customs Legislation), 위험관리과(Risk Management & Security), 지적재산권보호집행과(Protection of Citizens & Enforcement of IPR), 국제협력과(International Cooperation & EU Enlargement), 원산지검증과(Rules of Origin & Customs Valuation)로 나누어진다.
이 다섯 개 과에서 EU 관세법에 들어있는 모든 내용(EU 공동관세율표, TARIC, AEO, 원산지, 관세평가, 관세조사, 통관)을 다루며 이외에도 EU 관세법 개정, 회원국의 EU 관세법 집행 감독업무도 수행한다.
작년 EU 수출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수입통제시스템 ICS 2(Import Control System 2)도 관세국의 작품이다. 관세와 관련한 러시아 제재 역시, 큰 그림은 집행위원회 각 총국에서 협의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관세국에서 다룬다. 다만, CBAM은 관세국에서 다루지 않는다.
세계관세기구(World Customs Organization)에서 EU를 대표하는 대표단 역시 EU 조세총국 직원들이다.
현재 조세총국장은 그리스 국적의 Gerassimos Thomas가 맡고 있다. 재정전문가로 대학 졸업후 일찌감치 EU에서 일해왔다.
관세국장은 독일 출신의 Matthias Petschke이다. Directorate-General을 총국으로 부르고, Director General을 총국장, Director를 국장으로 부르다 보니 우리 공무원 체계와 약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국장을 Director General이라고 부르며, 과장을 Director라고 부른다. 이러한 혼란의 배경에는 한국과 유럽의 공무원 조직의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관세청과 국세청이 차관급 기관으로 각자 독립되어 있지만, 유럽의 경우, 관세청과 국세청이 독립된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으며, 대부분, 재무부나 기타 주무관서의 실이나 국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벨기에 관세국은 벨기에 재무부 산하 일개 국이며, 간부직원도 본부 기준, 국장(Director General) 1명에 부국장(Deputy Director-General) 1명, 그리고 소수의 과장급(Head of Unit)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유럽 세관에서 Director General이란 계급은 매우 높은 계급으로 그들에게는 우리의 관세청장이나 마찬가지다.
조세총국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국적만큼이나 언어도 제각각이다. 유럽의 특성상, 상당수 직원들이 독일어나 불어를 할 줄 안다곤 하지만, 100퍼센트 불어와 독일어가 통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 필자가 물어보았더니, 결국 영어로 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영어가 공용어인 회원국이 아일랜드, 몰타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EU 조세총국 직원들끼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고 영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관세국 직원들은 모두 영어가 능통했다. 발음이야 각 모국어의 영향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구사하는 단어나 문장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직원간 소통은 그렇다고 치지만, EU 공식회의에서 소통은 더 심각한 문제다.
특히, 이사회나 의회는 집행위원회와 달리 각자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곳이기에 공식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더욱 심하다. EU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공용어는 무려 24개다.
EU 집행위원회에 가면 1층 창문에 24개 언어를 장식처럼 붙여놓은 곳이 있는데,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EU 이사회 대회의장은 원형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각국 대표들이 앉는 자리도 원형, 벽도 원형이다. 대회의장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이사회에서 나오는 모든 발언을 자국의 언어로 통역하는 통역부스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상호간에 하나의 언어로 대화를 해도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는게 현실임을 감안해 본다면, 언어의 다양함으로 인해 EU가 지불해야할 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41개의 총국 중 2개 총국이 번역국(Translation)과 통역국(Interpretation)이다.
이사회와 집행위원회는 브뤼셀안에 슈만이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사회와 집행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다보니, 근처가 매우 번화하다. 특히, 카페나 브런치 식당들이 많은데, 여기서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직원들, 그리고 각국 외교관들과의 만남이 무수히 이루어진다.
특히 점심시간에 가면 생김새와 말이 다른 전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언어도 많다.
필자도 회의나 정보수집을 위해 슈만 거리를 자주 찾아가는 편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이쪽에선 영어, 저쪽에서는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폴란드, 스웨덴어 등이 들리면, 대화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삼십분 정도만 미팅을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곳이라 힘들지만 열심히 간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생경한 광경이라, 어찌보면 매우 혼란스럽고 정신 없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통합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EU가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EU의 미래에 대한 괜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프로필] 임현철 관세관
•제47회 행정고시
•외교통상부 2등 서기관
•관세청 국제협력과장
•국경감시과장
•김포공항세관장
•(현) EU 대표부 관세관
• 저서 : '관세를 알면 EU 시장이 보인다'(박영사)
• 논문 : EU PNR 제도 연구(박사학위 논문)
• 논문 : EU 국경제도(쉥겐 협정)의 두기둥: 통합국경관리와 프론텍스
• 논문 : EU 국경관리 제도 운용을 위한 EU의 입법적 역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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