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툭 걸칠 수 있게…한복도 일상의 옷이 돼야”

2025-11-21

온지음, 한국복식문화 연구 집대성 『자연을 여미다』 출간

휴일 고궁 근처를 찾는 외국인 상당수가 한복을 입는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옷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중앙화동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10년간의 한국 복식문화 연구를 집대성한 책 『자연을 여미다』(사진)를 출판했다.

온지음은 선조들의 의·식·주에 남아있는 지혜와 철학을 되돌아보며 우리 문화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해 현대인의 일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올바른 내일의 유산을 만들고 있다. 그중 옷공방은 우리 전통 복식에 담긴 선조의 지혜, 멋과 철학을 연구하고 여기에 현대적인 기법을 접목해 한국 복식 문화를 재해석하고 있다. 옷공방 설립초기부터 공방을 이끌어온 조효숙(가천대 석좌교수) 공방장을 만나 『자연을 여미다』의 특별한 구성과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한복의 형태를 조선 말기 것으로만 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에게는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000년의 역사가 있고, 시대에 따라 옷도 변화해왔음을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세계인에게 자랑할 것도 많고, 또 끄집어내 일상에 맞게 디자인할 것도 많겠죠.”

중국이 아무리 김치를 자기네 문화유산이라고 우겨도 한국인 집집의 냉장고마다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있는 한 상대가 안 되는 것처럼, 조 공방장은 “한복도 일상의 옷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중·일 옷의 생김이 비슷한 게 많아서 원조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진짜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예요. 중국이 한복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지만, 중국인이 가장 많이 입는 전통 복식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옷 ‘치파오’거든요.” 물론 조 공방장도 “일상에서 전통 복식 그대로를 입는 건 무리”라며 “배자를 이용한 조끼, 마고자를 응용한 재킷처럼 청바지에도 툭 걸칠 수 있는 ‘오늘의 한복’ 디자인이 많이 개발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70쪽 분량의 『자연을 여미다』는 삼국/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까지 2000년에 걸쳐 축적된 복식사를 시대별 아름다움과 미학으로 구성했다. 시대에 맞게 형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철학과 미의식은 무엇인지. 삼국/통일신라시대 복식 미학으로는 하늘·땅·사람이 어우러져 빚어낸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에너지, 즉 남녀 구분 없이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광활한 벌판을 누비고 호방함을 뽐내던 ‘역동성’을 강조했다. 불교에 바탕을 둔 귀족 문화와 찬란한 예술적 성취를 기반으로 한 고려시대는 ‘우아하고 화려함’이 미학의 기준이다. 선비 문화의 고졸한 미감이 돋보이는 조선시대부터 서양 실용주의를 받아들인 근대까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품격과 절제’ ‘기복과 상징’ ‘풍류와 파격’ ‘비움과 단순함’을 키워드로 한복의 다층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풀어냈다.

“이 미학적 특징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감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죠.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여성도 겉옷으로 바지를 즐겨 입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바지가 겉옷 대신 속옷으로 정착하죠. 흥미로운 건 속옷이지만 소재가 고급스럽고 모양도 다양하다는 점이에요. ‘살창고쟁이’처럼 통풍을 위해 몸통 부분 일부를 오려 창을 낸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도 있죠.” 책에는 18세기에 유행했던 한복 속바지·속치마 등을 설명하며 신윤복의 ‘야금모행’, 성협의 ‘노상풍정’ 등의 그림을 예로 들었다. 그림 옆에는 문헌과 유물 등을 참고해 제작한 옷공방 옷 사진들이 함께 있다.

온지음 옷공방의 연구는 이렇게 옛 기록들을 고증하고 복원하면서, 또 현대인의 일상에 맞게 재해석된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진행돼 왔다. 조 공방장은 특히 “고구려 무용총의 격자문 금, 고려 보상화무늬 금과 라 등 40여 종의 시대별 옷감을 현대 제직 기술로 재현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상류층이 애용한 얇고 부드러운 견직물 라를 수년 간 연구한 끝에 편직 기계를 활용한 라이크 라로 개발했는데, 이 직물로 만든 옷은 물 빨래도 가능하다. “연구하면 할수록 그 시대의 미감을 표현하려면 당대의 직물 만한 것이 없구나 느껴요. 이렇게 아름다운 직물을 일상화 할 수 있다면 한복의 미감을 더욱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복의 핵심은 뭘까.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한복의 변형 역시 불가피하죠. 다만, 과거로부터 미래로 변하지 않고 이어져야 할 두 가지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저고리(상의) 유형이 앞에서 여며 입는 ‘카프탄(caftan) 양식’이어야 해요. 멕시코의 판초나 그리스의 튤처럼 위에서 덮어쓰는 방식은 한복이 아니죠. 둘째는 상의와 하의(치마·바지)가 분리되는 ‘이부양식(二部樣式)’이어야 하죠.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 같은 원피스(one piece) 형태는 한복 역사에 없어요.”

조 공방장은 문화적·철학적 핵심으로는 ‘자연주의’를 꼽았다. “직선과 곡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형태는 자연과 공존하면서 순응하는 태도를, 의복과 신체 사이에 여유로운 공간을 두는 것은 숨 쉬듯 자연과 교감하는 태도를 담아낸 거죠. 소재·무늬·색채 속에도 자연의 상징을 풍성하게 담고 있어요.” 책 제목 ‘자연을 여미다’의 의미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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