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펀드 시장이 올 한 해 동안 해외 주식을 담은 상장지수펀드(ETF)의 인기를 앞세워 운용 자산을 100조 원 가까이 불리는 데 성공했다. 증시 전문가 대다수는 적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고 국내 정치 불안이 이어질 내년 초까지는 국내 펀드 시장의 한국 주식 외면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2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ETF를 포함한 국내 공모펀드의 전체 순자산은 지난해 말 348조 2764억 원에서 이달 23일 445조 3054억 원으로 97조 290억 원 증가했다. 특히 올 순자산 증가의 상당분은 국내 주식이 아닌 해외 주식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펀드의 해외 주식 금액은 33조 401억 원에서 59조 8843억 원으로 26조 8442억 원 증가한 반면 국내 주식 순자산은 58조 6443억 원에서 52조 2471억 원으로 6조 3972억 원 감소해 크게 엇갈렸다. 이 기간 국내 공모펀드가 해외와 국내 지역에 투자한 전체 순자산이 82조 7891억 원, 265조 4873억 원에서 130조 9822억 원, 314조 3232억 원으로 각각 48조 1931억 원, 48조 8359억 원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산 운용 업계는 올 한 해 외국에서는 주식으로, 한국에서는 채권 등 다른 수단으로 돈을 굴린 셈이다.
아울러 올해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을 이끈 상품은 단연 ETF였다. ETF의 총순자산은 지난해 말 121조 672억 원에서 23일 171조 7474억 원으로 50조 6802억 원 증가했다. 이는 전체 공모펀드 순자산 증가액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ETF가 공모펀드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8%에서 38.6%로 급등했다.
ETF는 또 전체 공모펀드 수가 올 들어 4930개에서 4525개로 405개 감소하는 동안에도 그 수를 813개에서 936개로 123개나 더 늘렸다. ETF를 제외한 일반 공모펀드는 실질적으로 528개 줄었다는 의미다. ETF 시장이 빠르게 커지다 보니 키움투자자산운용·한화운용·KB운용은 해당 상품 브랜드의 이름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해외 주식과 ETF 선호 현상은 올해 공모펀드 시장에서 서로 밀접하게 결합한 형태로 부각됐다.
해외 주식에 대한 최대 간접투자 수단 지위를 기존 공모펀드가 아니라 ETF가 새로 꿰차면서 전체 시장도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실제로 ETF는 올 들어 23일까지 국내 주식 순자산은 38조 5402억 원에서 36조 213억 원으로 줄이면서 해외 주식만 15조 6266억 원에서 41조 854억 원으로 크게 늘렸다. 국내 공모펀드가 올해 편입한 전체 해외 주식 자산의 95%가 ETF를 통해 유입됐다는 뜻이다.
수익률 상위 ETF도 해외 투자 상품이 휩쓸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24일까지 ETF 수익률 상위 20종목 가운데 19개가 해외 투자 상품이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빅테크TOP7 Plus레버리지’와 한화자산운용의 ‘PLUS 미국테크TOP10레버리지’의 경우 수익률이 각각 191.44%, 170.09%에 달했다. 국내 투자 상품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ETF는 2차전지주 하락에 베팅하는 KB자산운용의 ‘RISE 2차전지TOP10인버스(63.69%)’였다. 반대로 같은 기간 하락률이 컸던 1~20위 중 19개는 모두 국내 투자 상품이었고 유일한 해외 투자 ETF는 미국 거대 기술 기업(빅테크)에 역방향으로 베팅하는 ‘ACE 미국빅테크TOP7 Plus인버스(-48.28%)’였다.
사모펀드의 순자산은 지난해 말 619조 8150억 원에서 20일 665조 942억 원으로 45조 2792억 원 증가했다. 펀드 수는 1만 424개에서 1만 1457개로 1033개 더 증가했다. 사모펀드 역시 국내 주식 순자산은 11조 4883억 원에서 10조 8265억 원으로 줄였고 해외 주식만 7조 6377억 원에서 9조 3429억 원으로 늘렸다.
국내외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개인 순자산은 지난해 말 15조 4859억 원에서 23일 18조 3738억 원으로 3조 원 가까이 늘었다. 노후 대비용 투자 상품인 타깃데이트펀드(TDF) 설정액도 지난해 9조 원대에서 11조 원대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보호 무역주의가 강화될 내년에도 국내 펀드 시장이 한동안 미국 등 해외 주식 위주로 자산을 늘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또 ETF가 내년 시장 성장의 중심에 설 것으로 예상하면서 상반기 공모펀드 직상장 효과가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봤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에는 해외 주식형을 중심으로 펀드 시장이 성장했다”며 “내년에도 다양한 신상품을 앞세워 ETF의 성장세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고 2분기 시행 예정인 공모펀드 상장 거래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