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라는 교육 포퓰리즘

2025-04-23

대선 주자들이 또 수능을 부추기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첫 공약이 1년에 수능을 두 번 치는 것이었고, 경선 1차에서 낙방한 나경원 후보도 수능 100% 전형을 연 2회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내가 볼 때, 대선 공약으로 수능을 들고나오는 것은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수능 때문에 교육이 왜곡되는 것은 눈여겨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정성’의 화신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수능이 교육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는 엄청나며, 수능을 폐기함으로써 얻는 교육 본질 수호의 이익은 수능 폐기에 따르는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수능은 암기식 문제풀이 학습-정답주의 교육-무한경쟁의 연결고리를 가속하는 동시에 재수생과 반수생들을 양산한다. 또 학벌, 대학 서열화, 능력주의 신화 등을 만드는 주범이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의사나 법률가 엘리트 집단은 모두 수능 경쟁에서 그 서열의 꼭대기를 차지하며, 그 결과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능력지배주의(meritocracy)’로 정당화한다. 대학 서열과 학벌 역시 이런 개인 서열화가 집단화한 결과물이며, 그 정점에 ‘스카이’가 있다. 초중등학교 대부분 학생들은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며, 학교 교육과정은 수능 역량에 맞추어 교육 방식을 최적화시킨다.

당연하지만, 수능이 가정하는 역량들은 결코 한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학교 체계는 문자 발명과 함께 탄생했고, 문자를 기반으로 한 인지학습을 수행하는 데 최적화된 모형을 탑재하고 있다. 수능도 그런 전제를 공유하며, 또한 이 체계를 유지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인공지능이 문자 발명에 준하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 말은 학교의 미래적 변화를 촉구하는 말로 들린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종이 의사와 법률가라는 예언은 어쩌면 학교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서늘한 예측일지 모른다.

정치가 이끄는 교육 변화는 좌우 견해차를 떠나 그것이 가정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만큼의 근본적 변화를 통찰하는 가운데 제안되어야 한다. 단지 수능 몇번 더 보는 수준의 사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에 100조원 투자’ 등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공약이 교육 영역에 대해서도 필요할 수 있다.

사실,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 상황을 예견하는 주장들은 이미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은 앞으로 인공지능과 공진화할 수 있는 인간지능의 새로운 역량모델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학교가 생산한 인간 역량은 주로 인간의 고립적 사고력에만 한정돼 있었다. 반면 미래 교육은 인간을 넘어 인간·인공지능 공동체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새롭게 구상하고, 궁극적으로 기존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청한다. 특히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이런 질문에 얼마나 분명한 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과 함께 성찰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 및 그를 대행하는 교사가 교육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다. 교육은 학습자의 생애와 직업을 위한 학습 나침반을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학습의 주요 흐름을 교과에서 학습자 경험으로 전환해야 하며, 학교 졸업 이후에도 생애 전반에서 학습이 계속될 수 있는 교육 장치들을 제도화해야 한다. 학습과 경험, 일과 학업이 결합된 평생학습이 교육체계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하며, 향후 끊임없이 요구될 재교육, 계속교육, 일터학습 등 새로운 기능을 어떻게 기존의 학교 교육체계 안으로 편입시킬 것인가의 문제 역시 실질적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미래는 정답이 아닌 질문을 창조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이때 창의성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답이 주어지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 능력이다. 교육의 중심은 선다형 정답 찾기 모형을 과감히 버리고 문제와 상황을 창출하는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모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을 표준화하고 서열화하는 평가 방식들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감당하기에 현재 학교 체제는 부적합하기 그지없다. 정치는 교육체계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향후 이번 대선 주자들은 지금까지의 초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의 방식들이 차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깊이 따져봐야 한다. 특히 교실과 수업 중심으로 편재된 고립된 학교 교육 활동체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숙고가 필요하다. 일·학습 병행은 새로운 미래표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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