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와 우가 악수하는 곳, 성차별

2025-04-23

“A와 B는 같은 학과에서 어떻게 그리 잘 지냈대?” 내가 있는 학교의 교수 A와 B를 언급하며 몇년 전 지인이 했던 질문이다. 이 둘은 사회적으로 이름난 교수인데 A는 ‘이른바’ 진보, B는 ‘이른바’ 보수 정권의 대통령 인수위나 전략기획팀에 영향력이 꽤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지인은 정치적 신념이 딴판인 A와 B가 어떻게 같은 학과에서 갈등 없이 지냈는지 물어본 것이다. “정치 지향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달라 뵈는데, 젠더 관점에서 보자면 그 둘은 아주 똑같거든.” 망설임 없는 나의 즉답에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2017년 촛불혁명 광장의 열기를 몰아 집권한 당시의 여당이 ‘적폐 청산’을 앞세웠듯, 2025년 ‘빛의 혁명’ 결과로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번 여당은 분명 ‘내란 종식’을 내걸 것이다. 부끄럽고 부정한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판을 짜겠다는 결연한 다짐, ‘청산’과 ‘종식’만큼 유권자에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치적 구호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구호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어땠나. 지난 수백년, 남녀관계의 규범이던 남존여비가 물러선 자리에 새로운 규범 ‘성평등’이 들어서지 못하는 사이, 현실과 사이버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성이 성차별·성폭력을 당해왔다. 그런데 마침내 그 누적된 문제, 적폐를 일소하려는 듯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우리’가 광장에서 목청껏 외친 그 꿈을 이루려는 대통령이라니!

그러나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임무에 대해, 청산해야 할 적폐에 대해 ‘동상이몽’을 했던 걸까. 그네들은 광장에서 정치권으로 들어가며, 등 뒤 광장으로 통하던 문을 잠그듯 그렇게 ‘우리’를 문밖으로 밀어두고 담을 쌓아갔다. 그러고는 아무런 견제 없이 비장애, 이성애, 대졸, 중산층, 남성 중심의 기득권 정치를 지속했고, ‘우리’는 적폐가 청산되기는커녕 되살아나 더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높아진 담장 너머로 지켜봐야만 했다. ‘우리’는 여성에 대해 오물보다 더 지저분한 말들을 엮어 책의 형태로 세상에 던져 놓은 자가, 페미니스트를 공언한 대통령의 임기 내내 최측근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킨 모욕도 견뎌야 했다. 또한 ‘우리’는 페미니스트 대통령 집권 시기 ‘권력형 성범죄’가 기존 적폐 위에 ‘추가’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리라던 약속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과 정치 이념적으로는 정반대를 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차별은 없다고 장담한 정권 실세의 최근 드러난 성범죄는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기 주요 인사들의 그것과 닮았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 극우와 ‘좌빨’, 적폐와 청산 세력, 내란과 종식 세력 등 그 정치적 지향이 뭐가 됐든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문제시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한통속’이다.

빛의 혁명이 제2의 촛불혁명이 되어 구호만 요란한 채 빈손으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유는 최근 유력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 문제를 적시하며 개혁 의지를 드러낸 이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청산’과 ‘종식’을 텅 빈 구호로만 써먹을 심산인가!

▼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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