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윤 어게인(Yoon Again) 신당’ 소동을 보면, 윤석열은 정말 ‘어게인’을 망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한남동 관저에서 퇴거할 당시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운 그의 ‘애국시민들’이 맹렬히 외쳐댄 게 ‘윤 어게인’이었다. 자아도취에 빠진 그는 분명 그에 고무되었을 게다. 그랬으니 “이기고 돌아왔다”고 애잔한 정신승리를 토로했을 터이고,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호기를 부렸을 것이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무슨 수로 ‘새길’을 찾겠느냐고 얕보면 위험하다. 부부의 안위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이다. 진짜 ‘어게인’은 턱도 없지만, 그 망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극우 세력을 선동하여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게다가 ‘탄핵 반대’로 뭉쳤던 검찰·관료·언론·법원·학계 내 수구(守舊) 카르텔이 건재하다.
그들의 스크럼을 보여주는 계기적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나흘 만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 절친이자 내란 가담 의혹을 받는 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 헌재에 의해 파면된 윤석열이 한덕수를 지렛대 삼아 자신의 그림자를 헌재에 이식하려 했다. 아마도 대선 이후 판을 뒤집어보려는 음모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헌재의 가처분 인용으로 제동이 걸렸지만, 한덕수는 사과도 지명 철회도 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법원과 검찰의 협업으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감옥에서 풀어준 사건이다. 그때 ‘구속 취소’가 없었다면 파면 뒤에 윤석열이 이리 준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면은 되었지만, 그들이 부여한 ‘자유’를 발판 삼아 윤석열은 위험천만한 ‘새길’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감히 윤석열이 ‘어게인’을 꿈꾸고, ‘새길’을 도모한다. 탄핵 국면에서 강성 지지층에 포획되어 ‘윤석열 복귀’를 주장하며 ‘내란 옹호 정당’으로 질주해온 친윤의 국민의힘이 있어 가능해진 것이다. 매주 내란죄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로서는 국민의힘이 자신의 영향력 아래 끝까지 방패막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탄핵 반대파, 친윤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 윤석열에게는 바늘구멍 정도로 열려 있는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 못잖게 국민의힘이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게 절박하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탄핵 찬성파, 반윤 후보가 당선되면 ‘윤석열 손절’은 물론 친윤 세력은 폐족이 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과 친윤 진영이 국민의힘 경선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래서 아예 ‘보이는 손’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 경선판은 이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탄핵 반대파의 대표 격인 나경원 의원이 출마하고, 중도 확장성이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은 경선 출마를 포기했다. 탄핵으로 치러지는 대선에 나설 후보를 뽑는 경선판을 탄핵 반대파가 압도하는 기괴한 상황이다. 이에도 모자란 듯,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친윤 세력은 한 권한대행을 끌어내고 있다. 탄핵 정권의 국무총리가 탄핵으로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도착적이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하기야 “보수에게 철천지원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옹립했던 그들이다. 지금 그들에게는 탄핵 찬성파, 반윤 후보를 막는 것이 절대선이다.
그들이 짜고 있는 정치공학적 기획은 대강 이럴 것이다. ‘2차 컷오프에서 나경원을 올려 탄핵 반대파가 압도하는 4강 구도를 만들고, 결선투표에서는 김문수를 민다. 만에 하나 국민의힘 후보가 친윤이 아니거나 경쟁력이 뒤처지면 한덕수를 국민후보로 내세워 단일화한다.’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이 기획은 필패로 가는 길이다. 죄다 탄핵 찬반, ‘윤석열’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윤석열’이 부조되는 순간 가뜩이나 가망 없는 선거에서 승리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한다. ‘탄핵의 강’을 건너고 윤석열과 절연하지 않는 한 한덕수, ‘빅텐트’는 물론 백마 탄 초인을 데려와도 안 된다.
국민의힘이 변하지 않겠다면 달리 길이 없다. 해온 대로 윤석열을 품에 안은 채 ‘내란 방조 정당’ 본색을 숨기지 말고 선거 심판대에 오르면 된다. 필시 혹독한 심판으로 미증유의 참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국민의힘이 무너져야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재건될 수 있다. 더불어 ‘윤 어게인’의 미몽도 박살 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