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같은 곳이다. 하늘 아래 서성거리는 사람들, 곧 무언가 벌어지기 직전의 기운들. 막 버스에서 내린 학생(나1)이 기다리던 엄마(나2)와 가볍게 포옹한다. 작은 수첩을 들고 중얼중얼 외우는 소녀(나3)와 빵모자를 쓴 청년(나5) 외 여럿(나7-10)을 태우고 버스는 얼른 앞으로 떠난다. 옆으로 흐르는 것들이 무척 발달한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주어 없이 토막 난 문장들이 떠다닌다.
방황하기를 좋아하는 청년(나29)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단발머리 두 소녀(나4, 나6)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온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아저씨(나12)는 판소리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에도 딱 알맞은 장소다. 휴대폰에 집착하는 소년(나13)은 이 풍경이 익숙하다. 공중화장실 근처 나무들의 때깔이 좋듯 버스정류장 가까이 가로수는 더 의젓하다. 이 근방을 떠도는 근심을 풍부하게 먹고 자란 덕분이다. 여기에서는 구름도 멈칫, 공손하게 흐르는 것 같다.
버스는 아니 오고 어느덧 반고비를 지난 늙은이(나15)는 심심함을 견디려 긴 한숨을 쉰다. 바람에 날려가는 아쉬운 생애, 호흡은 종류가 많다. 처음엔 두개골의 정수리로도 숨을 쉬었다만 첫돌 즈음 천문은 닫히고 숨은 아래로 내려온다. 지금은 주로 코와 입을 이용한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서 더러 가슴과 단전호흡을 배우기도 하였으나 그때뿐이다. 어느 경지에 오른 도사들은 허벅지와 발뒤꿈치로도 공중과 교류한다고 어느 책은 전한다.
보이지 않는 녀석(나11)의 차는 언제 오나. 이번에는 바닥을 노크한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들어가도 좋겠습니까? 이 미끄러운 대지에 뒤꿈치를 들었다가 내려친 뒤 배꼽 근처 단전에 힘을 주며 발가락을 지렁이처럼 꼼지락거린다. 언젠가 노자를 배우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시대에 노자가 오신다면 무슨 직업에 종사할까. 칠판 앞에서 공부? 골방에서 철학? 아마도 고리타분하게 지붕 아래에 머무는 것을 몹시 경계하지 않았을까. 누가 뭐라 해도 그는 길의 도를 역설했으니, 혹 버스 운전이 제격이 아닐까. 이윽고 도덕경 한 대목을 외우고 입을 씻으면 검은 안경의 노자 운전수(나81)가 모는 버스가 정류장에 정확하게 도착한다. 수령 오십여 년의 가로수 은행나무(나129)가 지켜보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