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역사, 춤으로 다시 열다…파사무용단, 김개남 장군을을 현재로 소환

2025-12-28

 동학농민혁명의 이름들은 교과서에 남았지만, 모두 같은 목소리로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의 서사는 상징이 되기 쉬운 인물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북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파사무용단이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호명돼 온 김개남 장군을 무대 위로 소환하며, 지역의 기억과 현재의 질문을 춤으로 다시 엮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사무용단은 31일 오후 6시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창작무용 ‘개남(開南)’을 선보인다. ‘우지개에 가려진 세상을 다시 열다’라는 부제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품은 역사 속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김개남의 이름과 시대정신을 춤으로 복원한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의 거대한 분기점이지만, 그 서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호명돼 왔던 그 이름이다.

 파사무용단 황미숙 대표는 전북으로 활동 기반을 옮긴 이후, 외부의 시선이 아닌 지역 내부에서 길어 올린 역사와 기억을 무대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단순한 인물 열전이 아니라, 오늘의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서사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전작 천하공물설과 대동계의 정여립이 그러했고, 이번에는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 김개남 장군을 불러냈다.

 작품은 김개남의 삶을 영웅 서사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대신 당대 민중의 선택과 질문을 함께 끌어안은 인간적 초상으로 그를 다시 그려낸다. 부제에 등장하는 ‘우지개’는 김개남이 처형되기 전 머리에 씌워졌던 짚으로 엮은 틀이다.

안무는 이 상징을 중심으로 억압과 가림, 봉기와 좌절, 연대와 분열의 감각을 신체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또 만석보 건설과 탐관오리의 수탈, 농민들의 분노와 봉기, 전봉준과 김개남의 동지적 관계, 두 번째 봉기를 둘러싼 갈림길까지. 작품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국면을 6장과 에필로그로 나누어 서사적으로 전개한다.‘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김개남을 애도하는 민요적 구절이 춤과 맞물리며 흐를 때, 무대는 개인의 감상을 넘어 집단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으로 확장된다.

 공연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의 2025년 무대작품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됐다. 개남 역에 오창익, 전봉준 역에 박성율 씨가 출연하며, 안무 황미숙, 대본·연출 조주현, 작곡 임진영, 무대디자이너 한숙, 영상디자이너 황정남 등이 스텝으로 참여했다.

 황미숙 대표는 “김개남은 전봉준이라는 상징적 존재에 가려 그의 급진성과 실천성, 비극적 최후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며 “최근 김개남에 대한 연구사 정리와 재평가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이번 공연은 무대예술로 화답하는 하나의 헌사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황 대표는 “전북에는 아직 무대 위로 불리지 않은 이름들이 많다”며 “지역에 머문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가 아니라, 그 땅의 질문을 예술로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파사무용단의 행보는 지역을 소재로 삼되 지역에 머물지 않는 창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사 속 이름을 현재형 질문으로 되살리는 이들의 춤은, 연말 무대에서 전북이라는 공간이 품은 시간의 깊이를 다시 한 번 관객에게 건넬 전망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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