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로 성공한 영국 연금개혁
일방적 개혁 추진으로 실패한 프랑스
우리나라 연금제도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개혁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차이로 인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연금개혁 과정을 살펴보면 제도 개선 자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2003년에는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연금개혁이 무산됐고 2018년에도 단일 개혁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는 연금개혁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사회적 과정임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를 통해서도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영국은 연금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연금개혁에 성공한 반면, 프랑스는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개혁 추진으로 사회적 갈등만 심화시켰다. 연금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정부 주도로 급진 개혁…사회적 공감대 형성 못 한 프랑스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이슈와 논점-사회적 대화를 위한 연금개혁 공론화 기구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1995년 당시의 경제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보장에서의 급진적 개혁을 정부 주도로 추진했다.
사회보장세를 신설하고 직역 간 공적연금제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발표한 ‘Juppe 사회보장 개혁안’은 의회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
하지만 이후 특별연금 노조를 중심으로 개혁안을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고 국영철도와 공공교통의 시위로 3주 동안 전 프랑스의 대중교통이 마비됐다. 이후 우체국·교사·기타 정부 기관 노동자 등 약 200만명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프랑스 경제가 더욱 침체하고 결국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전면 철회했다.
프랑스의 1995년 연금개혁은 정부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노조에 대한 공격으로 대립 양상을 증폭시켜 설득에 실패한 사례로 평가된다.
국민 이해도·신뢰도 높이는 것 중점…성공한 영국 사례
영국 정부는 2002년 12월 총리실, 재무부, 노동연금부에서 각각 추천한 3명으로 구성된 연금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초 주된 목표는 사적연금 체계를 진단하고 정책대안을 권고하는 것이었으나 위원회는 3개의 보고서에 사적연금 차원을 넘어 연금제도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책대안을 포함했다.
각자 상이한 배경의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였으나 연금제도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권고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는 탈정치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금제도가 직면할 상황을 철저히 사실 위주로 분석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의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또 위원회에서 제안한 대안별 이점과 부담을 명확하게 정리한 자료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돼 대중의 협의 과정에 제공됐다. 이후 노동연금부에서 2005년 6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의 8개 지역에서 일반 대중 및 이해관계자들과 ‘전 국민 연금토론’을 개최하고 2006년에는 숙의적 협의와 여론조사를 겸한 ‘전 국민연금의 날’ 행사를 개최해 영국 6개 지역의 시민 1000여명이 참여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숙의와 투표를 반복·진행하면서 연금개혁안에 대한 대규모의 공적 협의가 이뤄졌다. 영국의 연금제도가 복잡해 당초 국민의 이해도·신뢰도는 낮았으나 숙의과정에서 사실관계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노후 대비를 위한 비용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판단을 변경했다.
韓 국회의원, 이질성 강해…공적 상설기구 필요성↑
우리나라는 지난 공론화 과정에서 재정안정론과 소득보장론 양측이 사실관계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등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과 결과 수용에 있어 잡음이 발생했다.
또 우리나라는 이질성이 강한 다수의 위원이 개혁안을 논의해 구조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보고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연금개혁은 일회성으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적 대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공적인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에 용이하다”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개진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으로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의 결과가 최종적으로 법률의 형태로 반영·이행된다는 점에서 국회에 연금개혁 공론화 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숙의와 토론을 반복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적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