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에 주근깨투성이. ‘말괄량이 삐삐’를 본 적이 있는가? ‘뒤죽박죽 별장’에 나 홀로 사는 삐삐는 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괴력의 소유자다. 어른들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동화 ‘삐삐 롱스타킹’을 쓴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젊은 날을 그리고 있다.
10대 소녀 아스트리드는 마을의 지역신문에서 인턴기자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 이혼소송 중이던 신문사 사장과 가까워져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는 바다 건너 덴마크에서 아기를 낳은 뒤 보모에게 맡기고 돌아온다. 남자는 법적 문제만 해결되면 아기를 데려와 기르자고 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법적 문제가 마무리된 뒤 남자가 청혼을 하는 장면이다. “결혼하자.” 남자는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다. 그리고는 설계도를 보라고 한다. “주방도 새로 만들어줄게. 아기가 울면 네가 달래기 편하게 방도 옮기고….” 그런데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간통죄 때문에) 감옥에 갈 수도 있다면서요. 아기를 1년이나 떼어놓고….”
“그냥 행복해하면 안 돼?” 남자의 한마디가 나온 뒤 그녀는 반지를 빼서 내려놓고 돌아선다. 그렇다. 남자는 “그냥”이란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인간은 ‘그냥 행복해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냥 믿어주면 안 돼?” “그냥 따라주면 안 돼?” “그냥 내 말 좀 들으면 안 돼?” 이럴 때 ‘그냥’은 세상에서 가장 불성실하고, 게으르고, 폭력적인 부사가 된다.
사람은 ‘그냥’이란 말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겨우 마음에 닿을까 말까다. ‘그냥’에 기대는 순간 진심은 증발해 버린다. 남자와 결별 후 아스트리드는 힘들지만 꿋꿋하게 싱글맘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아스트리드가 그냥 살지 않았듯 삐삐도 그냥 나온 캐릭터가 아니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