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5년 전 날 납치했다” 전설의 블랙요원이 나타났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2부-2]

2024-09-24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2부-2〉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①

1화. 북한에서 220일…25년 만에 공개된 납치 사건 전말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2부-2〉를 시작하며

백발의 노신사가 취재팀을 찾아왔다.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강당에서 남파간첩 출신 김동식씨의 ‘간첩·스파이의 세계’ 토크콘서트가 열린 지난 8월 6일이었다.

그는 “제 기구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누구시냐”고 물었다. “중국에서 활동한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공작관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라고 되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국 단동(丹東)에서 흑색 요원으로 비밀공작 활동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겠다.”

기자적 충동과 관심이 발동했다. 당시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취재팀은 김동식씨에 이어 정보사 출신 대북 공작장교 정규필 예비역 대령의 14년 공작 인생을 연재하고 있었다. “김동식·정규필씨의 증언을 읽으면서 25년 동안 가슴에 담아온 비밀을 공개할 용기를 얻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정보사가 어떤 곳인가. 대북(對北) 군사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 부대다. 정보사 소속 공작관이던 노신사는 사업가로 신분을 위장한 블랙(흑색) 요원으로 중국에 투입돼 비밀작전을 수행한 군인이었다.

정보사-흑색 공작원-북한 피랍-생환-강제전역이란 노신사가 던진 굴곡진 삶의 궤적은 남북 분단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동시에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지만 버림받은 공작원의 운명을 관찰하도록 했다.

그 후 노신사와 네 차례 만났다. 직접 그가 겪은 사납고 파란만장한 역경을 채집했고, 그가 작성한 100쪽이 넘는 비망록과 빛 바랜 사진들을 건네받았다.

노신사의 본명은 정구왕(65). 그는 1998년 3월 13일 대한민국 대북 공작 역사에서 초유의 일로 기록된 ‘CKW사건’의 주인공이었다. CKW사건은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에서 블랙 요원이던 현역 중령이 실종된 뒤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사건이다. 그의 이니셜을 딴 CKW사건은 민감한 정보 세계의 명과 암, 실체와 치부가 담겨 있어 이제껏 공개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의 숨막히는 목숨을 건 공작의 비밀과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게 된 불행한 여정을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대한민국 대북 공작사 초유의 사건

블랙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업무 중 죽거나 실종되면 신분과 존재가 부정된다. 비합법적 존재이기에 인정받지 못한다. 남파간첩 김동식씨가 남한에서 체포됐지만 북한이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같다.

전대미문의 납치극은 1998년 3월 13일 금요일 오후 10시쯤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시내 위안바오(元寶)구 마이커(麥克)소구 2동 502호에서 시작됐다. 정구왕이 숙소 겸 사무실로 쓰던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정구왕은 1년 반 전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으로 밀파됐다. 북·중 접경지에서 대북 정보 수집과 공작 수행이 임무였다.

그날 정구왕은 장세영(당시 28세)이란 중국 동포와 함께 있었다. 장세영은 96년 10월부터 공작원(Agent)으로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휴민트(인간정보)였다.

장세영은 북한과 중국 접경지에서 어선들을 조직해 북한군에 뇌물을 몰래 주고 서해에서 불법 고기잡이 사업을 하던 청년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배를 타기 전에 정구왕의 거처에 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정구왕은 북한 해군에 건넬 뒷돈 일부를 자신의 공작금에서 빼내 대주었다.

정구왕은 정보사로부터 생활비와 사업비 명목으로 월 1만~1만5000달러의 공작금을 받고 있었다. 한국 돈으로 당시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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