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주주제안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소액 주주들이 대기업들을 잇따라 압박하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와카모토제약의 오는 24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 0.3%에 불과한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자신을 이사로 선임해달라는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이 주주는 의결권 규모는 소수에 그치지만, 보유 주식 수가 제안 요건을 충족해 해당 안건을 제출할 수 있었다.
일본에선 와카모토제약의 사례처럼 1981년 제정 이후 40년 넘게 변하지 않은 '주주제안 요건'이 소액 주주들의 과도한 경영 개입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81년 개정된 일본 상법에 따르면 ‘전체 의결권의 1% 이상’ 또는 ‘의결권 있는 주식 300주 이상’만 보유하면 주주제안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후 주식 분할 확대와 최소 투자 단위 하향 등으로 인해 '300주'의 금전적 가치는 대폭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는 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1989년 말 기준으로 NTT 주식 300주의 가치는 약 4억 엔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500만 엔 이하로 떨어졌다. 노무라홀딩스도 10억 엔에서 2000만 엔대로 하락했다. 이처럼 과거보다 훨씬 적은 자금으로도 주주제안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값싸진 권리’와 달리 주주제안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이다.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선임이나 배당 확대 같은 요구는 물론, 정관 변경을 통한 설비 매각 요구까지 가능하다. 닛케이는 “일본은 일상적 경영 판단을 이사회에 맡기는 미국과 달리, 주주제안의 권한이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허점을 노린 제안도 등장하고 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의 오는 27일 주총에서는 사명에서 ‘·(점)’ 표시를 삭제하라는 제안이 상정됐다. 제안자는 “사명이 멋을 부리는 듯해 보기 좋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주 압박이 거세지면서, 올해 주주총회를 끝으로 상장폐지를 선언한 기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 10일, 도요타자동직기는 1949년 상장 이후 75년 만에 상장기업으로서의 주총을 마쳤다. 경영진은 "지나친 주주 개입이 ‘도요타다움’을 훼손할 수 있다"며 비상장화를 결정했다. 프랑스계 펀드 롱샹 SICAV는 그동안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정관에 반영하라”고 도요타자동직기에 요구해왔다.
비공개화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프리미엄(상장가 대비 높은 가격)을 제시해 주식을 매수하는 구조이므로, 주주는 고가에 주식을 팔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비공개화를 택하는 기업이 급증하면서 당황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프리미엄은 일회성 수익일 뿐, 10~20년 장기 투자 수익이 더 중요하다”며 유망한 투자처가 사라지는 현실을 우려했다.
이에 재계와 경제산업성은 '300주 요건'을 폐지하고, 의결권 1% 이상 보유자만 제안이 가능하도록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어느 정도 찬반이 엇갈릴 수 있는 안건이라도,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회사와 주주 모두에 긴장감이 생긴다는 논리다.
300주 기준이 폐지될 경우, 주주제안을 위해서는 시가총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의 주식을 보유해야 하므로, 필요 자금 규모는 대폭 증가하게 된다. 자연스레 제안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다만, 이를 두고도 "기관투자자가 들어가지 않는 중소형 종목에 대한 견제는 누가 가할 것인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관이 관심을 갖지 않는 소형 종목은 소액주주들이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