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청년여성농민의 발목을 잡는 것

2024-07-03

얼마 전 공부 모임에서 20대 여성농민을 만났다. 내가 처음 귀농한 나이와 비슷하게 탈도시를 감행한 청년이라 더욱 반가웠다. 여럿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당신, 혹시 간첩이 아니냐?”,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산다고 하니 “밥은 누가 하느냐, 농기계를 다루거나 힘쓰는 일은 누가 하느냐?”고 묻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무려 17년 전 20대 중반에 귀농했을 당시에도 종종 들었던 질문이었던 까닭이다. 반공 세대에 뿌리 깊은 간첩 혐의를 한 귀로 듣고 넘겼는데, 강산이 바뀐다는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안되는 청년여성농민의 아득한 지위를 실감했다. 2019년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에 선정된 1600명 중 남성이 1321명(83%)이었고 여성은 279명(17%)에 불과했다. 최근 10년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유독 청년세대의 성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농업·농촌을 떠나는 청년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본과 연고 없으면 귀농하지 마세요’라는 실패담이 숱하다. 타향살이에 주눅 든 청년농부의 마음을 지지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결국 혼자라는 서러움으로 탈농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나 역시 20대 후반에 집과 땅을 어찌어찌 빌렸다는 안도감 뒤에 임차농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드디어 밭에 씨앗을 심으며 슬그머니 정착의 뿌리를 내릴 요량이었지만 결혼 안 한 이주민은 구성원 자격이 없다는 마을 텃세에 흔들렸다. 기실 20·30대 여성의 귀농·귀촌은 사회적 기대와 다른 대안을 찾고자 이주하는 데 비해 지역에서 전통적 역할을 요구한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그렇기에 물꼬를 트는 청년여성을 위한 중간 지원 플랫폼이 요구됐고,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실시한 ‘여성농업인 실태 조사’에서도 여성농민들이 가장 만족하는 사업으로 ‘청년여성 농업·농촌 탐색교육(시골언니 프로젝트)’이 꼽혔다. 올해 우리 지역에도 ‘시골언니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던 과거에도 시골언니들 덕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여기 있다.

의리파 언니들의 연대와 농생태계에 합류한 소속감으로 버틴 귀농 초기였다. 선배 농부의 혜안은 탁월했다. ‘줄탁동시’란 사자성어가 꼭 들어맞을까. 병아리는 알 안에서, 어미닭은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 마침내 부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줄과 탁! 절묘한 조화로 청년여성농민의 다양한 개척과 마을의 전환 서사가 한땀 한땀 엮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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