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여! 동성커플에게도 우리와 같은 지옥을 맛보게 하소서.’ 2013년 9월7일 김조광수·김승환씨의 동성 결혼식이 열린 서울 청계천에 ‘한국기혼자협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현수막이다. 종교계의 동성혼 반대를 이성애자들의 ‘결혼은 지옥’이라는 흔한 푸념으로 비틀어 풍자했다. 동성끼리의 첫 공개 결혼을 결행한 당사자들은 ‘당연한 결혼식’이란 타이틀을 내세웠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들의 염원은 당연하지 않다.
법적 허용은 고사하고, 국가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기에 ‘가족’을 꾸린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국가 기본 통계인 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동성 동거인은 ‘기타 동거인’으로 분류돼 동성 부부 규모를 확인할 길이 없다. 실태 파악이 안 되니 정책 수립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 문제를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2020년 국정감사에서 공론화했고,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도 통계에 반영하라고 권고했으나 관련 부처들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일보한 변화가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동성 가구원을 ‘배우자’ ‘비혼동거’로 입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동안엔 성별이 같으면 ‘오류’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입력이 아예 안 됐던 문제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번 결정은 성소수자의 존재가 국가 통계에 기록되는 첫 사례로,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해소를 위한 첫걸음이다.
데이터 공백은 지워진 존재들에 대한 차별을 ‘보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영국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남자가 표준인 세상에서 여자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어떻게 여성의 존재가 지워지고 위협받는지를 고발했다. 하물며 ‘표준’ 밖의 성소수자는 오죽할까.
성소수자들은 이제껏 정책 바깥에 있었다. 인구조사를 시작으로 각종 국가 통계에서 성소수자를 포괄하면, 그 차별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이제 다양한 시민의 존재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내야 할 일이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린 인구가 지난해 123만명을 넘어섰다. ‘정상 가족’을 고집하느라 낡은 법과 제도를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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