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A 2.0 시대에 농업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노동력 부족은 심해지고 생산비는 계속 오른다. 폭염·열대야·극한 호우 같은 기후위기도 농업 경영을 거듭 압박한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생산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현장은 해법을 '스마트농업·농업로봇'에서 찾고 있다. 데이터 기반 정밀농업을 기본 구조로 삼고 고된 농작업을 자동화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국가농업 AX플랫폼, 중소농 스마트온실 표준모델, 노지 스마트농업, 농업로봇 실증 확대 같은 정책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자신문은 'FTA 2.0 시대 농업 대전환' 기획의 일환으로 '스마트 K농업 좌담회'를 열고 스마트농업과 농업로봇이 농업 경쟁력의 전략이 되기 위한 조건을 짚었다. 좌담회에는 이덕민 농림축산식품부 스마트농업정책과장, 이충근 농촌진흥청 농업로봇과장,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서대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연구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전했다. 사회는 조정형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이 맡았다.
〈참석자(가나다순)〉
△서대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서면)
△이덕민 농림축산식품부 스마트농업정책과장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충근 농촌진흥청 농업로봇과장
△사회=조정형 전자신문 부장
노동·기후·시장 3중 압박…스마트농업은 선택 아닌 생존전략
◇사회(조정형 전자신문 부장)=FTA 2.0 시대에서 스마트농업·농업로봇을 농업 경쟁력 핵심 전략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덕민 농림축산식품부 스마트농업정책과장=우리 농업은 기후와 구조의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폭염·열대야·극한 호우가 일상화됐고 경지면적도 과거 150만헥타르에서 계속 줄고 있다. 외연을 넓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 전환의 중심이 스마트농업과 농업로봇이라고 본다. 인력과 경험에만 의존해선 기후위기와 노동력 부족을 버티기 어렵다. 데이터를 활용해 정밀하게 제어하고, 고된 작업은 로봇과 자동화 기술이 대신해야 한다. 농업을 산업으로 유지하고 경쟁력을 지키는 출구 전략이 스마트농업·농업로봇이다.
◇이충근 농촌진흥청 농업로봇과장=노동 투입 구조를 보면 현실이 더 분명해진다. 벼농사는 10시간이면 끝나는 작업이 양파는 70시간, 사과는 150시간, 딸기는 550시간 이상 걸린다. 이 시간 대부분을 사람이 몸으로 채운다. 농촌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구조를 유지하긴 어렵다.
사람을 더 쓰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과 로봇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이앙기 한 대를 움직이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자율직진 기능으로 한 사람이 운영한다. 단순 작업부터 자동화하면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고 남는 인력을 더 고부가 영역으로 돌릴 수 있다. 스마트농업과 로봇은 '있으면 좋은 기술'이 아니라 농업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노동력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지금은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고용허가제로 수급을 맞추지만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은 내·외국인 모두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일본보다 임금 수준도 높아 현재는 한국을 선호하지만 임금·환율·정책이 바뀌면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농사일 특성상 5~6개월 동안 인력을 붙잡아야 하지만 작업은 특정 시기에 몰린다. 중간 공백기에 인력을 재배치하기도 어려워 농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서대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서면)=대내외 구조 변화 속에서 농업 패러다임은 생태·환경,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맞춰지고 있다. 이를 동시에 달성하는 수단이 정밀농업에 기초한 스마트농업, 농업 AX, 농업로봇이라고 본다.
데이터 기반 정밀 스마트 영농체계를 구축하면 생산·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농지·수자원·투입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생태·환경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노동력을 줄이면서 안전과 식품안전성을 강화하고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도 대응할 수 있다. 첨단기술과 바이오를 결합해 새로운 농산업 성장의 동력도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있는데 현장에선 안 돌아간다…본질은 구조 전환
◇사회=스마트농업 기술이 이미 많이 나와 있는데도 현장에선 “안 돌아간다”는 말이 나온다. 기술과 현장 사이 괴리를 어떻게 보나.
◇이주량 연구위원=우리는 기술 투자를 생산 단계에 집중해왔다. 시설·장비 고도화, 자동화에 방점을 찍었지만, 유통·경영·서비스를 예측하기 어려우면 농가는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수직 투자는 많은데 수평 확산이 뒤따르지 못한 구조다.
또 하나는 모델 부재다. 특정 품목·지역에서 기술과 비즈니스가 함께 작동한 '완결된 사례'를 만들고 확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은 전국에 조금씩 뿌려놓은 상태라 농가가 체감하기 어렵다.
◇이덕민 과장=스마트농업은 시설원예 기준 약 16%가 스마트화된 수준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사업 등을 통해 5만5000헥타르 시설 상당 부분에 환경제어·센싱 장비를 보급했고 데이터를 모으는 구조도 만들었다.
그럼에도 확산이 더딘 이유는 결국 '사람'이다. 관행농을 해온 농업인은 재설비 투자에 대한 부담이 크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도 익숙하지 않다. 기술만 공급하면 된다는 사고로는 현장에서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스마트농업관리사 자격을 만들어 중간급 전문 인력을 키우고 스마트축산 서포터즈로 선도 농가와 후발 농가를 멘토·멘티로 연결하고 있다. 기술·자금·컨설팅을 묶어 진입장벽을 낮춰야 괴리를 줄일 수 있다.
◇이충근 과장=농업로봇은 제도·비용 장벽도 크다. 자율주행 키트만 봐도 국산이 800만~1000만원 수준이다. 기존 트랙터·이앙기에 후부착하는 방식은 농기계로 분류되지 않아 부가가치세 환급을 받기 어렵고 면세유 적용도 안 된다. 같은 장치라도 장착된 상태로 출고되면 농기계로 인정돼 세제 혜택을 받는다.
영세 농가는 이런 조건에서 고가 장비 도입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 세제와 장비 분류 기준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이런 지점이 풀리지 않으면 기술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돌지 않는다.
◇서대석 연구위원(서면)=괴리를 줄이려면 산업·경제·수용성 세 관점을 함께 봐야 한다. 산업 측면에선 정밀제어 시설원예·축산에 맞는 고품질 SW·HW를 실용화해 보급해야 한다. 공공 연구개발(R&D)로 일부 자동화는 구현했지만 양질의 데이터 생산·분석·활용은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 측면에서는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임대형·체험형 스마트팜, 성공 사례 확산, 통신비 바우처 같은 수단으로 농가가 도입 전 충분히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용성 측면에서는 지역·품목·영농조건별 맞춤형 모델과 교육·컨설팅 체계를 갖춰야 한다. 스마트 영농 표준 모델을 만들고 지역별 기술지원 거점을 운영해 교육과 현장 컨설팅, 기술 개선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비용 절감 같은 구체 사례를 제시하면 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스마트농업은 ‘사이트 중심’…이제는 ‘연결·플랫폼’으로
◇사회=스마트농업이 개별 농가 성공사례를 넘어 구조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주량 연구위원=한국 스마트농업의 가장 큰 특징은 '사이트 중심'이라는 점이다. 개별 온실·축사·논에 장비와 시스템을 넣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에선 영세농이 스마트농업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상위 10% 농가가 쌓은 노하우를 아래 90% 농가와 연결하면 전체 생산성이 올라간다. 벼·한우는 품목 단위 표준화와 데이터 축적이 쉬운 영역이다. 국가 플랫폼이 상위 농가의 생산·경영 패턴과 제어 전략을 하위 농가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면 스마트농업이 일부 농가의 성공 사례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전체 구조를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충근 과장=농진청이 올해 시작한 'AI 농업경영혁신컨설팅' 사업이 이런 방향을 보여준다. 1700농가의 소득·경영 데이터를 분석해 하위 45% 농가를 찾아가 컨설팅했다. 딸기 농가의 경우 상·하위 농가 생산성 차이가 15배까지 나는 사례도 있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료·온도·에너지 투입 패턴을 비교해보니 차이점을 농가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는 50농가 수준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했고 내년에는 1000농가로 확대할 계획이다. 상위 농가의 지식과 데이터를 하위 농가에 연결해 전체 수준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이덕민 과장=시설농가 상당수가 0.5헥타르(1500평) 미만 중소농이다. 이 구조를 전제로 한 표준모델이 없으면 스마트화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내년부터 오이·딸기 중심으로 중소농 전용 스마트온실 표준모델을 개발한다. 신축형·리모델링형으로 나누고 장치와 설비도 농가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우수 중소농 사례를 표준모델에 녹이고 정책자금·교육·컨설팅과 함께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서대석 연구위원(서면)=농업 전반으로 확산하려면 산업·기술·법·제도를 함께 봐야 한다. 정부와 공공부문은 통신·데이터 인프라를 필수 인프라로 보고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다양한 농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이용 활성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수집·분석·유통하는 생태계를 효율화하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은 공공이 떠받쳐야 한다. 전문인력과 농업인 교육, 서비스 확산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법·제도 측면에서는 스마트농업법에 근거한 국가·지역 단위 기본계획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 정의·보안·보상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정교하게 마련하고 농업용 로봇 등 첨단 기자재의 안전·운영 책임 범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농업 분야 소버린 AI에 대응할 법·제도적 준비 역시 시급한 과제로 본다.
노지·로봇 스마트화 없이는 기후·수급 안정도 없다
◇사회=노지 스마트농업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노지 스마트화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이덕민 과장=스마트농업을 시설 중심으로만 보면 전체 농업의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국내 농업 대부분은 여전히 노지이고 기후위기나 수급 불안도 이 영역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내년부터 노지 분야 기술 적용과 확산을 본격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밭작물 기계화와 연계해 병해충 관리, 생육 모니터링, 작업 자동화 같은 요소를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만들려 한다. 노지 스마트화는 첨단 농업의 부속이 아니라 쌀·밭작물 수급 안정과 직결된 과제로 보고 있다.
◇사회=농업로봇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보나. 성과와 한계를 짚어달라.
◇이충근 과장=농업로봇은 노지용, 과수용, 시설용 세 영역으로 나눠 개발하고 있다. 방제·제초·경운 같은 단순 작업은 기술적으로 이미 구현돼 일부는 시범 보급 단계다. 수확·수분·선별처럼 난도가 높은 작업은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자율주행 이앙기는 서울대와 공동 개발 후 민간 기업에 기술 이전해 1000여대 이상 판매됐다. GPS 한 개만 쓰면 저속에서 정밀도가 떨어져 안테나 두 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신호 안정성을 높였다. 이런 기술이 실제 농업기계에 결합되면서 현장 반응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전국 475개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활용해 방제·제초로봇 등을 시연·임대하는 구조를 확대하면 농가 인식을 빨리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이주량 연구위원=농업로봇은 자칫 '드론 시즌2'가 될 수 있다. 지금 농업드론 시장의 80%를 중국 DJI가 차지한다. 국내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을 열었다가 대부분을 외산이 가져간 구조다.
중국이 2000만원대 휴머노이드 로봇을 내놓고 농업용으로 적용하기 시작하면 국내 기업이 버티기 어렵다. 우리가 개발하는 속도보다 두세 발 앞선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로봇도 같은 길을 피하려면 국내 제조 기반과 서비스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기술뿐 아니라 시장 진입 전략, 렌털·서비스 모델까지 묶어서 봐야 한다.
◇서대석 연구위원(서면)=스마트농업·농업 AX의 핵심은 후방산업 발전과 관련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기존 종자·기자재 산업은 스마트농업에 맞게 재편돼야 하고 과도한 장비 중심 산업은 개선이 필요하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접목해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역할을 민간이 맡을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스마트농업, 세대교체를 이끈다
◇사회=스마트농업과 로봇이 농업의 세대교체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보는가.
◇이덕민 과장=청년농이 안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정부는 청년 정착지원, 스마트팜 종합자금 우대, 농지 구입 지원, 멘토·멘티 제도, 스마트농업관리사 컨설팅 같은 진입·정착 지원을 마련해 두고 있다. 녹색혁명·백색혁명도 유능한 인재가 이끌었다. 앞으로 'AI 농업혁명'도 결국 사람이 만든다. 청년이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술을 익혀 다음 세대로 지식을 전파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농업의 판이 달라질 것이다. 정부도 그 기반을 더 다듬겠다.
◇이충근 과장=앞으로 농업은 AI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농진청도 농업 AI 에이전트 'AI 이삭이'를 개발해 초보 농업인에게 재배·경영 정보를 안내하는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 청년이 농업을 훨씬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로봇이 현장에 보급되면 '흙을 만지는 일'이 중심이었던 농작업이 달라진다. 청년들이 쉽게 쓸 수 있는 가격과 성능의 로봇을 개발해 '일 농장-일 로봇'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흐름이 만들어지면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
◇이주량 연구위원=세대교체를 위해선 두 가지가 풀려야 한다. 첫째는 은퇴 구조다. 지금은 고령 농업인이 땅·연금·상속 구조 때문에 쉽게 은퇴하지 못한다. 은퇴가 원활해야 청년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둘째는 청년농 정책 방향이다. 청년 창업 위주 정책은 결국 또 다른 소농을 만드는 구조다. 해외처럼 '청년 취농' 개념으로 바꿔 큰 농업회사·농업 현장에서 충분히 배우게 한 뒤 필요하면 본인 의지와 민간 투자로 창업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제작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5년 FTA 이행지원센터 교육홍보사업)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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