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배우는 공평의 원리

2024-10-10

왼팔 하나로 탁구 경기를 하는 브라질의 브루나 알렉산드르 선수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에게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줬다. 그는 백신 부작용에 따른 혈전증으로 1살도 되기 전에 오른팔을 절단했다고 한다. 한국과의 경기에서 브라질 팀이 완패하면서 8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관중은 열렬한 박수로 응원했고 언론은 “한 팔로 한계 깬 당신”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파리 올림픽을 빛낸 주인공” 등의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우리는 경기에 진 선수와 팀에게 왜 이렇게 환호하는가? 이는 우리가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비롯된 것이지만, 더 중요한 점은 스포츠가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목적이 무조건 승리라면

체급과 성별을 나눌 이유가 없어

차이 존중과 공존의 사회 위해선

기회 평등의 노력과 장치가 필요

현대 스포츠에서는 누가 강자인지를 정하는 것만이 경기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급과 남녀를 구분하는 경기 방식이 대표적이다. 60㎏과 100㎏의 유도 선수가 맞대결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엄청난 기량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체중이 가벼운 선수가 아무리 열심히 훈련해도 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기 결과는 그 선수의 잘못이나 부족함이 아니다. 격투기 경기에서 체중은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신체조건은 선수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 스포츠에서는 격투기뿐 아니라 육상과 수영을 포함한 대부분 경기에서 남녀를 구분하여 경기한다. 이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에 따른 경기력의 격차를 선수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체급이나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위해 이겨야 하는 개와 늑대의 싸움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로마 시대 검투사의 경기가 타고난 신체조건과 상관없이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현대 스포츠는 크게 진보한 것이며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인종이나 남녀의 성, 종교, 부모의 재산, 가정 배경 등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거나 개선할 수 없는 것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문제는 사회적 약자가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된다는 불평등한 현실이며,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기회 평등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하는 최대한의 사회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이런 노력과 사회적 장치 위에서만 결과에 대한 차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 교육은 자기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이므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장학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금은 우리도 많이 개선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장학금이라고 하면 수석이나 우등생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우수한 학생을 격려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다른 학생이 이를 본받게 하려는 의도로 장학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 대학에서는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미국 대학에서도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최상위 대학에서는 졸업생의 기부금이 워낙 많아 대다수 학생이 장학금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모두 예외적이다. 장학금은 보통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돌아간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need based)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적어도 경제적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상실하는 일은 없게 하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도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려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의 편차가 극심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는 것은 이런 노력과 사회적 장치가 있기에 가능하다.

공평(equity)은 무조건적 평등(equality)도 아니고 무조건적 경쟁도 아니다. 무조건적 평등은 노력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결과가 돌아가는 체제다. 이는 도덕적 해이와 나태로 이어지면서 생산성이 저조하고 활력이 없는 무기력한 사회로 전락하게 만든다. 무조건적 경쟁은 남녀나 체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격투기를 하는 것과 같다. 각자도생의 야만이다. 흔히 능력주의로 포장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당(fairness)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공평은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는 지팡이를 주고 못 걷는 사람에게는 휠체어를 줌으로써 이동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차후에 노력할 기회조차 뺏어서는 안 된다는 휴머니즘이다. 올림픽 정신을 고양한 알렉산드르와 브라질 체육위원회에 찬사를 보내며, 태생적 차이를 존중하고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보듬으면서 함께 걸어가는 공평한 사회를 꿈꾼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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