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첫 번째로 듣는 음악대로 한해가 흘러간다는 ‘새해 첫 곡 법칙’이 있다. 불과 몇 년 전 인터넷 세상에서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유행이자 지론과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법칙의 힘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12월 31일과 1월 1일, ‘로또’ ‘대박’ ‘행운’ 등의 음악 키워드로 상위권이 도배된 각종 음원 차트이다.
여전히 이 미신 같은 이야기에 코웃음 칠 사람도 있겠지만, 3분간의 시간 동안 성공적인 한해를 계획할 수 있다면 제법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싶다.
이토록 치밀한 새해 첫 곡을 계획한 이들의 간절한 희망은 ‘운’으로 완성된 소망이다. 복권 당첨도, 부자가 되는 것도, 건강한 것도 모두 ‘운’이 작용해야만 이룰 수 있는 성취이기 때문이다.
2024년 상반기,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원영적 사고’는 많은 이들이 지니고 싶은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원영적 사고란, 기다리던 빵을 앞사람이 전부 사 가자, 불평 대신 “앞사람이 전부 사가 운이 좋게 갓 나온 빵을 받게 됐다. 역시 행운은 나의 편!”이라고 기뻐하는 사고이다. 불행을 행운으로 치환하는 초긍정적 사고는 그간 많은 사람이 잊고 있었던 ‘운’이 얼마나 가까이 있던 것인지 떠올리게 해준 건강한 울림이었다.
이 울림이 오래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번아웃(Burnout) 증후군, 연료가 불타올라 소진되어 무기력해진 현재 청년 대다수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을 청년 본인들이 누구보다 간절히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아웃은 갑자기 나타난 트렌드 키워드 같은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행복은 부와 명예 그리고 성적순이 동반된 노력만이 해답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산물이다. 상투적이지만 10대부터 90대까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가 청소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이는 것처럼, 취업준비생이 끝없이 쓸모를 증명하는 것과 직장인들의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들 말이다. 그간, 청년들은 결승선 없는 마라톤에 연료가 소진된 무기력한 자신을 탓해왔다. 그저 문제를 회피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스스로 세뇌하는 방법이 아닌, 문제를 인식하고 치환하는 방식의 원영적 사고가 필요했다.
그렇게 긍정과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원영적 사고’와 ‘새해 첫 곡 법칙’의 닮은 점은 ‘쉽다’는 데 있다.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고 희망을 꿈꾸는 데 채 3분이 걸리지 않는다. 큰돈이 들지도 밤새 노력할 필요도 없다. 누가 더 좋은지 경쟁할 필요조차 없는 두 지론의 파급력이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소진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행운만큼은 쉽게 자신에게 다가와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새해 덕담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고 얼떨결에 성공하세요.’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이 말을 들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 그 반대로 살고 있기에 새해 덕담으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가만히 있기만 해도 바쁜 것이 세상살이다. 청년들은 덕담대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2025년 1월 1일 당신이 들은 새해 첫 곡은 무엇인가? 만약, 구질구질한 이별 노래를 들었다 해도 괜찮다. 연애하지 않으면 이별할 일도 없으므로 올해는 연애 대신 자기계발로 능력을 키우는 해로 만들면 될 것이다. 불행은 행운으로 쉽게 치환하면 되는 일이다.
2024년과 2025년 우리는 유독 많은 행운이 필요한 순간을 지나가는 중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를 꿈꾸며 생각해 왔고, 소원하는 행운을 위해 노래를 선택해 듣고, 불러왔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또래 청년들이 연료를 소진해버리는 일 없이 건강하게 각자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주하길 응원한다. 그리고 2025년,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음악을 트는 것만큼 쉽게 행운과 행복이 재생되길.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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