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보니 쉬는게 낫겠어요"...불어나는 '쉬었음 청년' 들여다보니

2025-02-09

# 오히려 직장에 한번 갔던 친구들이 ‘쉬었음 청년’이 되는 것 같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에 실망감을 느끼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그런 경험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문성혁 용산철도고 산학협력부장)

#대학교 졸업하자 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택배, 이삿짐, 배달, 주차안내도 했다. 다시 제대로 취직하려고 알아보니 최저임금인데도 관련 경력을 요구해서…열심히 살았는데 좀 허탈하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투자하면서 쉬고 있다. (이모씨 29세 '쉬었음 청년')

청년 고용 나쁘지 않다는데...쉬었음 청년은 급증

최근 노동시장에 불안한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46.1%로 2000년 이후 역대 3위인데, 반면 ‘쉬었음’ 청년이 꾸준히 늘고 있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쉬었음 청년’은 41만 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급증했다. 코로나19(44만 8000명) 이후 꾸준히 줄다 다시 증가세다. 전체 청년 중 ‘쉬었음 청년’ 비중은 5.3%로 역대 최대치다.

‘쉬었음 청년’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때 취업 준비나 진학 준비 없이 ‘쉬고 있다’고 응답한 비경제활동 청년 인구를 말한다. 미래의 노동시장 주역인 청년이 노동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그리고 특성화고등학교 교사와 취업컨설턴트 등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쉬었음 청년’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유다.

고졸 이하, 일 경험 있는 학생들이 ‘쉬었음 청년’ 됐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가장 유의 깊게 보고 있는 통계 중 하나는 쉬었음 청년의 ‘학력’이다. 쉬었음 청년 중 고졸 이하 비중은 57.6%로 대졸 이상(42.4%) 보다 15%포인트보다 높았다. 이정한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고졸 이하 청년들은 아무래도 인적·사회적 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이들은 쉬었음이 장기화되면 대졸보다도 탈출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정책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졸 이하 쉬었음 청년이 많은 건 ‘약한 고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현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대졸자가 대다수인데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먼저 소화되지 못하면서 고졸 일자리로 내려와 고졸 이하 청년 취업자를 밀어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취업을 하다 혹은 일하다 지쳐 잠시 쉴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쉬었음 기간’이 길어지는 게 문제라고 우려한다. 고용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도 11.5개월로 1년 가까이로 늘어났다. 지난해보다 1.1개월 늘었다. 1년 동안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청년도 절반 이상(53.4%)이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장기화할수록 재취업은 당연히 어려워진다. 청년 장기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나 구직 단념자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부분은 쉬었음 청년들이 대부분 ‘직장 경험이 있다’고 답한 점이다. 2024년 12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 중 73.6%가 직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문성욱 용산철도고등학교 산학협력부장은 “일부 졸업생들이 취업 후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족으로 퇴사하고, 이후 군 복무를 마친 뒤 경력 단절로 인해 쉬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졸업생들이 퇴사하는 주된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와 근무 환경에 대한 불만족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실망감’이 쉬었음 청년으로 이어지는 고리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쉬었음 청년들이 꼽은 쉬고 있는 이유 1위도 원하는 일자리 찾기 어려워서 (30.8%)였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일 경험’만이 해법

현장에서 학생들을 접하는 전문가들은 결국 제대로 된 ‘일 경험’만이 해법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백해룡 용산철도고 교장은 “오히려 AI 시대에 유망한 정비사 자리는 많은데 학생 모두가 기관사가 되고 싶어 한다. 막연하게 ‘멋진 이미지’ 때문”이라며 “실제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과정과 교육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동헌 아산스마트팩토리마이스터고 교장은 “고등학교도 늦다. 초등학교 때부터 며칠씩 일 체험하고 탐색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올해 미취업 상태가 지속되는 청년들에게는 일 경험(5만 8000명)과 첨단산업 분야 직업훈련(4만 5000명)의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구현경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 과장은 “유럽연합(EU) 청년고용 대책을 모델로 삼아 한국형 ‘청년보장제(유스 개런티·Youth Guarantee)’를 시행해 청년의 실직이나 졸업 발생 직후 4개월 이내에 빠르게 개입해 ‘쉬었음 청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유빈 실장은 “일부 정부 ‘일 경험’ 사업은 현재는 말 그대로 어떤 직무인지 경험하는 걸로 그치는 수준”이라며 “실제로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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