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나온 ‘입주청소 아줌마’ 이 자격증, 의대 아들 키웠다

2025-02-10

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한 나는 결국 첫아이를 낳고 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 달 사정상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에 우유·주스 등을 배달하며 생업에 뛰어들었다.

작은 회사에 재취업한 남편과 맞벌이하며 1원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 화장품 가게를 차렸다. 둘째도 낳고 작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자 나는 2년제인 백석대(현 백석예술대) 음대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따서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학원은 입소문을 타면서 금세 수강생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남편 회사가 사라져버렸고, 집 담보로 무리하게 확장한 학원엔 수강생이 뚝 끊겼다. 우리 가족은 학원은 물론 겨우 마련했던 아파트까지 날리고 빚더미에 앉았다.

이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입주 청소다. 이른 아침 직업소개소에 가서 “오늘 입주 청소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순서대로 봉고차에 실려 청소 현장에 도착한다. 대부분 이사 나가 엉망이 된 빈집, 폐가 수준의 낡은 집이다. 이런 곳을 하루에 서너 곳씩 쓸고 닦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무너져내리는 몸보다 더 힘든 건 바닥을 친 자존감이었다. 무릎으로 박박 기면서 온갖 먼지를 닦아낸 뒤 잠깐 봉지 커피라도 종이컵에 타 마시려 하면 관리인이 “빨리 차에 타라. 커피는 이동 중에 차에서 마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커피 한 모금 마실 짬이 허락되지 않는 삶이었다. 집에 돌아와 먼지 뒤집어쓴 옷을 벗으면, 종일 얼마나 기어 다녔던지 무릎에 바지 솔기를 따라 피딱지가 맺혀 있었다.

한창 공부할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미 40대 중반이 된 우리 부부에겐 자금도, 젊음도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공부뿐이었다.

지금, 나는 현역 엔지니어이자 억대 연봉자다. 내겐 정년도 은퇴도 없다. 입에 풀칠도 힘들었던 입주 청소 아줌마의 믿기지 않는 변신이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느냐고?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했냐고? 이제부터 알려드릴 테니 따라와 보시라.

은퇴Who 4화 〈목차〉

📌명함에 찍힌 세 개의 자격증

📌소방기사 자격증 2개, 1년 만에 딴 비결

📌기계설비기술사까지…한국에 스무 명 남짓

📌기술사 자격증, 나의 ‘작은 밥솥’

※ 〈은퇴Who〉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밥 훔쳐먹다 퇴학당한 소년, 23개국 도는 황금노년 비결

②월 80만원에 해외 한 달 산다…은퇴자들의 여행·골프 성지

③“숨만 쉬어도 지출 200만원” 58년 개띠, 공포의 경조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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