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 윤석열

2025-02-26

이쯤에서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 가결 직전에 자진 사퇴한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헌재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선 공통점들이다.

첫째, 두 사람 모두 보수정당 소속의 반공주의자들이다. 닉슨은 상원의원 시절 매카시와 함께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선 적이 있다. 윤석열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보듯이 북한과 중국의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고, 민노총이나 민주당 같은 조직들이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진보의 아성 깬 반공 정치인

수사협조 거부와 합법 주장도 닮아

닉슨은 자진사퇴, 윤은 재판까지

탄핵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 중요

둘째, 진보 정권의 아성을 깬 보수 정치인들이다. 대공황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로부터 시작된 뉴딜연합은 후임 트루먼까지 민주당의 20년 집권을 가져왔다. 이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2선을 했지만 다시 케네디와 린든 존슨의 민주당 8년 집권으로 이어졌다. 닉슨은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남부 지역을 휩쓸면서 뉴딜연합을 깨뜨린 장본인이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에서 일약 보수정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되며 20년 집권을 호언장담하던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왔다.

셋째, 두 사람은 모두 수사에 협조하기를 거부했고 자신의 행동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닉슨은 민주당 선거본부 도청과 관련한 녹음테이프를 제출하기를 거부하다가 법원 명령으로 마지못해 제출했고, 탄핵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도 자진 사퇴의 조건으로 이 자료의 비공개를 요구해 관철했다. 한남동 관저에서 공수처와 대치하던 윤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퇴 후 몇 년이 흐른 다음 했던 유명한 인터뷰에서 닉슨은 “대통령이 무언가를 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뜻이다”는 발언으로 다시 한번 회자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뭐든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었지만, 통치행위를 하다 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윤 대통령의 설명이 떠오른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공통점이고, 그 이후의 운명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닉슨은 탄핵 표결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의회의 동의하에 자진 사퇴를 할 수 있었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갔으며,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아 모든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닉슨의 경우 의회의 탄핵 절차 개시 이후 수차례의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표결이 임박하기까지 10개월이 걸린 반면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 이후 열흘 만에 탄핵 가결되었고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헌재의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국회에 군병력을 투입하고 불복하는 시민을 처단하겠다는 포고문을 냈기 때문이다. 의원이건 요원이건 그런 건 다 부차적인 문제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가졌을 고뇌를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민주적 시스템을 정면으로 침탈하는 이 두 가지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이 전부 다 틀린 건 아니다. 대국민 담화문이나 최후 진술에서 그가 말했던 국가적 어려움이나 국정 수행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든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는 상당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해서 야당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혼란상을 하루빨리 극복하기 위해 탄핵심판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도의 위상을 가진 국가라면 대통령이 직무정지 된 상태에서도 국정의 운영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는 것이 정상이다. 오히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이 서둘러 진행되었을 때 양극단으로 갈라진 국민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지난번 서부지법 난입사태가 이미 예고한 바 있다. 국가적 혼란을 그리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별 잘못도 없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했는지에 이르면 더 말할 가치가 없다.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통령의 자격은 박탈한다 하더라도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제도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바보라서 닉슨을 탄핵하지 않고 자진 사퇴에 동의해주었을까. 의회의 조사위원회를 이끌며 최대한 공정한 조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피터 로디노 의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민주당 소속이고 모두들 내가 대통령을 끌어내리길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찌 됐건 그는 우리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은 우리의 시스템입니다. 주권자가 부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직(職)에 도달한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있고, 이것은 그에게나 우리 역사에 있어서나 슬프고도 슬픈 순간입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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