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웃길 거 같은데 반전이 있어요. 안 그럴 거 같은 금희가 무의식 중에 대걸레를 쥐어짜니 웃기다고 하더라고요. 난 물이 떨어지니 대걸레를 짰을 뿐인걸요”
인터뷰에서 만난 우아한 비주얼의 김성령은 모든 질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답변 한마디가 시선을 끌었고, 가끔은 웃음을 줬다. 그가 연기한 ‘정숙한 세일즈’의 ‘오금희’도 그랬다. 기품있는 브레인이면서도 한순간에 웃음을 가져다줬다. ‘반전’있는 행동이 이끌어낸 웃음이었다.
지난 2021년 웨이브 오리지널 정치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에서 B급 감성의 재치를 보여준 김성령이 ‘정숙한 세일즈’에서 또 한 번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다만 이번 주제는 정치가 아닌 ‘성인용품’이다.
“성인용품을 다룬 드라마가 좋았기도 했고 신선했어요. 폭력적이고 미스테리한 작품을 하다가 너무 재미나고 따뜻하다고 느껴서 하게 됐습니다”
김성령은 14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스포츠경향에 ‘정숙한 세일즈’의 소재가 재밌었다고 밝혔다. 성인용품을 다루는 작품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의 성적 해방과 경제적 해방 등의 성상 서사를 담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다뤄보지 않은 소재였기 때문에 ‘잘 될까?’ 싶기도 했죠. 여자들이 주축인데 앞으로 이런 드라마가 잘 돼야 비슷한 스토리를 제작하지 않을까요. tvN ‘정년이’도 반응이 너무 좋고 시청률이 잘 나오더라고요. 여자들이 주축이 되는 드라마가 잘 되니 선영이도 좋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여자의 서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제작될 가능성을 열어준 것 같아서 큰 의미가 있어요”
지난 17일 종영한 ‘정숙한 세일즈’에서 김성령은 ‘성(性)’이 금기시되던 1992년 시절, 성인용품 판매에 뛰어든 ‘방판 시스터즈’ 4인방 중 오금희로 분했다. 오금희는 한때 ‘아씨’라고 불리며 교양있게 컸지만, 집안의 주선으로 결혼한 후 무료하게 지내던 중 정숙(김소연)을 돕기 위해 한 시골 마을 성인용품 방문판매에 도전한다.
“오금희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책도 보고 영화도 봤는데 그렇게까지 열린 사람은 아니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게 금희를 가장 잘 드러낸 대사인 것 같아요. 어쨌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재미를 얻었고, 늦은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성(性)과 관련된 답변도 이어졌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질이요’라고 답하는 대목을 꼽았다.
“너무 재밌었지만 그걸 너무 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갱년기도 겪었기 때문에 (성인용품이)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는 걸 내 입으로 하면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겠더라고요. 대사가 안 잘려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여기에 아쉬운 마음(?)을 담은 속마음 토크도 더했다.
“섹스 이런 건 다 삐 처리 해야 하는데, ‘왜 해야 하나?’ 싶었어요. 그렇게 야한 게 아닌데…15세 (보호제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15세도 알 거 다 알던데요(웃음) 10대 후반 아이들이 (성에 대해) 정말 잘 알아야 건전해질 거예요”
이번에는 여성 서사와 성인용품을 담은 작품에 도전했지만 액션 연기와 느와르 장르도 마다하지 않는 김성령이다. 한때는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가 ‘미저리’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미스코리아로 데뷔한 이후로 여러 반전을 꾀하며 37년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 연기의 원동력은 부족함이었어요. 해도 안 되면 ‘이번 역할은 잘하려나?’ 하다가도 ‘아 여전히 아닌 것 같다. 부족하다’고 했어요. 내 역할이 좋은지도 보고, 잘 됐으면 좋겠고, 많은 이들이 웃기도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베테랑 연기자인 그도 떨리는 순간이 있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연극을 했어요. 첫 공연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더라고요. ‘첫 연기니까 만족스럽지 못한 거겠거니’ 했는데 해도 해도 떨렸어요. 작품을 해서 만족이 안 되면 단편을 할까? 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그래서 안 가리고 이 작품, 저 작품 다 해보게 됐어요. 여전히 연기는 목마르고 있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까 싶습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다. 그러나 작품을 쫓는 건 아니었다. 김성령은 연기자로서 목표로 하는 지점이 있냐는 질문에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크게 목표를 둔 건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꿈을 갖진 말자는 주의거든요. 너무 꿈을 가지면 쫓기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제 그런 나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내가 행복하면 물 흐르듯이 작품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면 놀아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속된 말로 돈은 좇는 게 아니고 따라오는 거라고 하는데, 내가 작품을 쫓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숙한 세일즈’가 선물이었던 것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편, 그에게 선물과도 같은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의 마침표를 찍은 김성령은 내달 11일 가족 코미디 영화 ‘대가족’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