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그리고 자연인. 상반된 두 수식어가 모두 붙은 사람, 김대호 MBC 아나운서다. 입사 14년차인 차장이자 인왕산 자락에 있는 집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고 수영을 하는 그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대장이 반찬’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요일 오후 4시50분 방송되는 ‘대장이 반찬’은 김‘대’호와 배우 이‘장’우가 농촌에서 제철 식재료를 수확한 후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따라 하기 쉬우면서 참신한 반찬 조리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연근으로 추어탕·멘보샤·바쓰(중국식 맛탕)를 만들고, 단감과 홍시로는 크렘브륄레·말랭이무침·김치찌개 등을 선보였다.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저도 요리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요즘엔 바빠서 밥을 늘 사 먹었는데 프로그램 덕분에 요리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양념에 홍시를 넣고 담근 순무김치는 집에 가져가서 혼자 한통을 다 비웠어요.”
김씨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하게 된 소감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지금 깨닫게 됐네요. ‘대장이 반찬’은 제가 주도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소중해요. ‘생방송 오늘 저녁’을 7년 동안 진행하면서 늪에서 연근을 캐는 모습을 해마다 봤지만 이번에 몸소 경험하게 됐죠. 방송에 나오는 메뉴도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요.”
경기 양평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씨는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자랐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집 마당 텃밭에서 오이·토마토·쌈채소 등을 길러서 먹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농사를 지어봤으니 농산물의 소중함을 잘 알아요. 힘들게 키운 작물에 흠집이 조금 있다고 버려야 하는 농민들의 슬픔을 십분 이해하죠. ‘대장이 반찬’을 통해서 못난이 농산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4화로 기획된 ‘대장이 반찬’은 이제 마지막 방송만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대장이 반찬’이 봄에 다시 돌아와 봄나물로 만든 맛있는 반찬을 소개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김씨는 2011년 아나운서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을 통해 아나운서가 됐다. 방송에 큰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배우려다 어머니 설득에 재수학원을 등록했고, 제대 후엔 만화 ‘식객’의 주인공처럼 전국을 다니며 채소 장사를 하려고 트럭 면허를 땄다. 대학 4학년 때 문득 ‘목소리와 외모는 나쁘지 않으니 아나운서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준비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남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얻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는 입사 후 사춘기를 겪어야 했다.
“3년차 때 번아웃이 왔어요. ‘불만제로’를 진행하며 제 기준엔 괜찮은 음식을 비위생적이라고 고발하고, 공감되지 않는 라디오 사연에 위로를 건네는 게 힘들더라고요. ‘신입사원’에 함께 나왔던 탈락자들이 떠오르며 ‘내가 그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표를 냈다. 아나운서국장은 그에게 ‘휴가를 쓰고 쉬다 돌아와서 그때도 퇴사할 마음이 있다면 그만두라’며 만류했다. 김씨는 ‘당장 내일부터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휴가를 쓰겠다’고 얘기했고 국장은 이를 허락해줬다. 그는 회사에서 가장 먼 곳인 남미로 한달간 여행을 떠났고, 쉬고 나니 다시 일할 힘이 생겼다.
“회사로 돌아가는 날 선후배들을 보는 게 민망하더라고요. 삐걱거리는 기계에 윤활유를 칠하듯, 관계를 부드럽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버지가 재배한 들깨로 짠 들기름을 선물로 돌렸죠. 프리랜서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제가 힘들었던 시절, 회사와 동료들이 베푼 배려를 갚아나가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사직서 반려 뒤 10년, 그는 MBC 대표 아나운서가 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이 많아져서 내 일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요즘엔 바쁜 걸 탓하지 말고 일하는 시간이 80, 그 외 시간이 20이라면 이 20을 나를 위해 잘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러 방송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고요. 그저 일로만 느꼈던 방송이 요즘에서야 재밌어졌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방송인으로 남고 싶어요.”
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