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류 르네상스, 깊이가 숙제다

2025-04-03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LA 킹스가 지난달 23일 홈구장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한국 문화 축제인 ‘K-타운 나이트’를 성황리에 개최하며 LA 한인 사회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코리아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과 하모니카 연주, 한인 DJ가 선사하는 K-팝의 향연은 경기장을 찾은 현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런가하면 LA 다운타운에선 한국 미슐랭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돼지곰탕 전문점 ‘옥동식’의 팝업 식당이 연일 화제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2월까지 9개월간 운영될 예정인 옥동식 팝업 매장은 뉴욕타임스도 극찬한 한국 전통의 맑은 돼지곰탕 맛을 LA 미식가들에게 선보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도넛 브랜드 ‘카페 노티드’가 오는 12일 LA에 미주 1호점을 오픈하며 디저트 시장까지 K-열풍을 이어갈 전망이다.

스포츠, 음식,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최근 LA에서는 그야말로 ‘한류 르네상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LA 문화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한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등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한류 소비는 한국 문화를 ‘겉으로 즐기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 대한 반응은 뜨겁지만, 그 이면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어, LA 현지인들이 한식을 맛본다고 해도 김치나 곰탕 한 그릇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철학, 역사적 의미까지 깊이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LA타임스의 저명한 음식 비평가 빌 에디슨과의 인터뷰에서 삼계탕을 메뉴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삼복(三伏)’이라는 절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유래나 담긴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삼복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해주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 당시 에디슨은 “한식이 진정으로 타인종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정통 한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확산이 필요하며, 그 수요는 한국인들의 생각 이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K-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나 시대적 배경, 사회상은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현재의 한류 소비는 콘텐츠라는 ‘결과물’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 문화적 ‘맥락’까지 깊이 공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피상적인 소비 형태가 지속된다면,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머지않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한류를 지속 가능한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 문화가 지닌 고유한 ‘문화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단순한 볼거리나 먹거리를 넘어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과 가치관, 삶의 지혜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함께 전파해야 한다. 화려한 K-팝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LA를 비롯한 타지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온 한인 이민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조명될 때, 비로소 감상자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대학의 한국학 강좌나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처럼 언어와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창구를 더욱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일회성 문화 체험이 장기적인 관심과 깊이 있는 이해로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전략적인 지원과 연대 또한 중요하다. 문화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태미 김 전 어바인 시의원은 지난 2022년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소름 끼칠 만큼 치밀한 로비로 미국 사회에서 문화 영향력을 유지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민간 차원의 뜨거운 열정에 더해 한국 정부와 LA 한인 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한류의 제도적 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갈 때, 한국 문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미국 사회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진정한 ‘생활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LA 킹스의 ‘K-타운 나이트’ 행사장에서 뜨거운 함성, 옥동식 팝업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달콤한 K-도넛의 인기. 이 모든 현상이 단순한 유행으로 스쳐 지나갈 것인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 한국의 이야기를 깊이 새기는 문화의 씨앗이 될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고민에 달려 있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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