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초겨울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분노한 동학 농민군 2만 명이 3차로 거병해 전북 삼례를 떠났다. 무기는 죽창이 많았고, 소금 섞은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무명 띠를 두르고 진군했다. 충남 공주 우금치에 진을 친 일본군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소좌(소령)는 산정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농민군을 기다렸다. 병력은 전투원 156명과 군무원 460명이었다. 11월 8일에 시작한 전투에서 농민군은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말 그대로 처참한 패배였다.
전투가 끝나자 미나미 소좌는 본국에 전투 보고서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전황 보고가 아니라 왜 조선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에 관한 의견서였다.
그에 따르면 조선에는 ①계급 차별이 심하고 ②행정 단위가 너무 층층이며 ③관청 이용이 어렵고 ④지방관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않으며 ⑤도로가 후진적이며 ⑥어린이를 교육하지 않고 ⑦호적이 정비되지 않았고 ⑧장묘(葬墓)에 낭비가 많다.
그의 지적 가운데 가장 크게 들리는 건의는 행정 단위의 층이 너무 많다는 점인데 지금도 적용된다. 현행 행정 단위는 광역 시·도→시·군·구→읍·면·동→리→통→반의 6단계 구조다. 세계적으로 이런 층층이 없다.
도를 없애고 70개 정도의 중대형 광역시로 개편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경남 창원(마·창·진), 충북 청주, 전북 익산을 성공한 사례로 꼽는다. 인구가 66만 명인 충남 천안과 겨우 3만 명인 청양이 같은 행정 조직과 청사를 갖고 있어야 하나. 심지어 어느 군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보다 인구가 적다.
130년 전의 일본군 소좌가 본 것을 왜 지금의 그 잘난 관료들은 모르고 있을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알량한 광역 단체장들의 호강을 위해 나라가 이토록 희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금치 전투 130주년을 맞아 미나미 소좌의 말이 자꾸 귓전에 맴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