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만의 미투’ 최말자씨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배움’ 이라는 ‘용기’

2025-05-29

인터뷰 말미 ‘공부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최말자씨가 답했다. “제 삶이지요. 희망이고, 행복이지요.” 이어 말했다. “대학이라는 걸 와서 처음 느껴봤어요. 내가 어디 있고, 주변엔 무엇이 있는지, 세상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를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우물 안 개구리인 저를 꺼내주었습니다.”

국가가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 최씨는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 혀를 깨문 일로 알려졌다.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기록됐다. 중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 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 들어갔다.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56년만의 미투’로 불렸다. 지난 21일 서울 대학로 국립 한국방송통신대 교정에서 만나 대학 공부, 재심 청구 전후 삶,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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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2013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사와 세계사, 경제, 철학, 예술, 여성의 삶과 문화 등 여러 과목을 들었다. 이 중 수십 번 강의 영상을 돌려본 게 전공 수업인 ‘성, 사랑, 사회’다. 방송대의 이 과목은 ‘성별이나 성정체성에 제약받지 않는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삶’,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 계급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성이나 사랑에 관한 통념, 차별, 규범 문제’를 다룬다. 당시 백영경 방송대 교수(현 제주대 교수)가 강의를 담당했다.

최씨는 “동성 관계, 여성이나 영세민 인권 문제를 잘 배웠다. 공부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구분을 확실하게 했다. 국가가 내 인권을, 정의를 묵살한 것과 여자라서 평등하게 재판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는 피해자인 나를 가해자로, 죄인으로 낙인찍어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이런 자각에 그친 게 아니다.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면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백 교수님 말씀에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게 맞는구나’ 그런 용기를 냈습니다. 배움이라는 게 곧 내게 용기였어요. 희망도 얻고, 자존감도 생겼지요. 그래서 재심 청구를 한 겁니다.”

최씨가 이 용기로 배운 게 연대와 정의다. “용기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줬다. 세상은 아직 너무 따뜻하고, 정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정의는 나와 함께 연대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연대’의 뜻을 깨달은 다른 계기도 있다. 재심 청구 즈음 어린 성폭력 피해자들이 한 기자를 통해 ‘손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소녀들이 ‘꼭 이기시라, 응원한다’고 했어요.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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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로 향한 연대가 다른 피해자들에게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최씨는 무죄 판결이 후세대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저야 인생 다 살았고, 지금 재심에서 이긴다고 무슨 명예가 남겠어요. 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겨선 안 되죠. 지금도 여자들이 계속 성폭력을 당하고 있잖아요.” 그가 말을 이었다. “부산에서 한 여성에게 돌려차기한 인간이 징역 20년 살고 나오면 복수하겠다는 게 뉴스 나오더라고요. 피해자 심정이 어떻겠어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서명 등 여러 운동에도 참여했다. 재심 청구와 여러 활동으로 2023년 여성의전화 ‘40주년 특별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의 보이스상’, 2024년 2월 ‘노회찬 상’,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올해의 여성운동상’를 받았다. 여성의날 때 연단 아래 여성들이 “최말자”를 연호하던 순간을 두고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했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고 했다. 처음 경험한 연대는 아니다. 1964년에도 여성들이 법정에 몰려와 ”“죄 없는 최양을 풀어주고, 저놈을 구속시켜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최씨는 그때도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최씨는 한국여성의전화에 상금을 성폭력 피해를 위해 쓰겠다는 뜻을 알렸다. “지금은 못 받는다. 무죄 판결 나면 후원해달라”는 여성의전화 말을 듣고는 기부를 미뤄뒀다.

이 연대와 싸움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야 한다. 신문사나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나면 며칠씩 지난날 재판받던 악몽이 떠올라 몸살을 앓았다. 2~3일 앓고 나면 동네 뒷산에 올라 소리도 지르고 돌아가신 부모에게 기도했다.

최씨는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다. “그 당시에 불효를 했지요. 부모님께 제일 죄송해요. 아버지는 처음에 난리가 나게 혼을 냈는데, 나중에는 저를 많이 감싸주셨죠. 저 때문에 검찰, 경찰서에도 많이 다니시고요”. 그는 “교도소에서 밤중에 풀려났는데, 아버지가 마중을 나오셨다. 밤에 아버지 뒤를 따라 산길, 논길을 걷던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최씨는 사건 이후 고통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 억울해서 살아가는 내내 단 하루도 잊어 본 적 없어요. 내 입 밖으로 꺼내 본 적도 없어요. 그저 가슴에 묻고 살았죠. 법도 몰랐고, 재판에서 그리 결정하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재심 청구할 때까지) 56년을 하루하루 그저 버텼지요. 숨만 쉬며 살았습니다.”

당시 동네 밖을 나가지 못했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식도 올렸는데 시가 쪽에선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결국 헤어진 일도 큰 상처로 남았다. 부산 구포시장에서 튀김 장사, 팥빙수 장사를 했다. 보세 공장도 10년을 다녔다. 안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행복도, 희망도 남일로만 여기며 악착같이 하루하루 버티고 살면서도 놓지 못한 게 ‘공부’다. 최씨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게 한이 맺혔다고 한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시키려고 중학교를 안 보냈어요. 방문을 걸어 잠그고 1주일 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눈도 깜짝 안 했어요.”

언니의 한과 열망을 아는 동생이 2009년 어머니 학교인 부경중학교 입학 홍보 신문 광고를 보고 알려줬다. 그해 3월 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2013년 3월 부경보건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방송대에 들어갔다. 입학 전 방송통신대 부산 서비스센터로 가 상담했다. 학교 직원들이 추천한 문화교양학과를 선택했다.

컴퓨터로 과제를 작성하고,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저장 방법을 몰라 날리기도 여러 차례였다. 6개월을 학교로 직접 나가 선배들한테 묻고, 듣고, 익혔다.

고생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즐겁고 행복했다.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여러 스터디에 나갔다. 문화교양학과에서 해마다 각 지역을 돌며 여는 전국문화제에도 꼬박 참석했다.

무엇보다 공부에 재미를 들였다. “인문학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철학 강의를 듣고는 말 그대로 내 삶에서 나를 찾으려 노력했지요. 공부가 보람과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사, 세계사, 유럽바로알기, 고전함께읽기, 영화로 생각하기, 음악, 미술 과목을 배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니,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과장 좋아한 과목은 역사다. “초등학교 때는 역사를 안 배웠으니까, 새로 아니까 재미있어요. 신라 역사가 제일 좋아요. 제가 경주 최가거든요(웃음). 어릴 때 살던 마음에 경주 최가들이 모여 살기도 했고요.” 방송대 다닐 때 역사문화 탐방 행사에 거의 다 참여했다고 한다.

철학 공부를 하면서 어린 시절 생각을 이해하게 됐다. “제가 조그마할 때부터 사람은 왜 이 세상에 나는지, 왜 죽는지 같은 생각을 조금 많이 했어요. 수박밭 원두막을 지키면서 시간이, 공간이, 우주가 뭔지 하는 생각도요.”

최씨에게 공부는 끝이 없다. 요즘도 매일 동네 복지관에 가 여러 강좌를 듣는다. 그림 공부는 오래 했다. 재심 청구를 한 뒤 마음을 다잡지 못할 때 시작했다. 여성의전화 활동가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주며 권유했다. 8년 차에 접어든 그림은 수준급이다. 최씨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전시회도 하려 한다.

최씨는 이 전시회를 열 수 있을지 걱정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최씨 주장이 맞는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다”며 부산고법 등의 재심 기각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부산지법 형사5부는 지난 9일 최씨 사건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는데, 이날 검찰이 “유죄 선고 당시 증거로 채택된 4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나쁜 놈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욕을 합니다. 무죄를 내리려는 행정적 순서만 남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검사들이 61년 전으로 돌아갔어요. 대법원에서 내려온 (파기환송 결정) 자료를 봤는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그 증인들을 어떻게 데리고 오겠다는 건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며 준 상처를 다시 주겠다는 거잖아요.”

최씨는 자신 재심 결과로 재심 심의가 폭넓어지기를 원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정당방위를 인정받아서 위기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가해자에게 더욱 엄중한 벌이 내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최근 다시 걷기나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면 건강해야죠. 연대해주시는 분들한테 부담을 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관리합니다. 꼭 버티고, 끝까지 연대해 이길 겁니다.”

▼ 김종목 기자 jom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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