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
1~2㎝ 상처 5개로 간·종양 절제
모의수술·대화로 시야 확보 도와
“자신감을 갖되 철저히 준비해야”

인간의 몸에서 혹독한 환경을 견디는 장기가 ‘간’이다. 하루에도 수백 종류의 화학 반응을 조절하고 독소를 해독하기 때문이다. 이런 간은 강인하지만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간경변·간암으로 간 일부를 절제해야 하거나 간 이식이 마지막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복잡한 혈관 구조로 수술 시 시야 확보가 필수였던 간 수술에서 상처를 최소화하는 복강경의 길을 개척해 온 이가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다. 그는 지난달 생체 간이식 기증자의 복강경 간 절제에서 세계 최저 합병증 발생률(0.9%)을 기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복강경 간 절제술은 배에 1~2㎝의 구멍 5개를 내고, 수술 기구를 넣어 간을 잘라내는 방법이다. 떼어낸 간은 골반선을 10㎝가량 절개해 빼낸다. 40~50㎝의 큰 상처가 남는 개복 수술보다 회복이 빨라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다만 의료진 입장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려운 가운데 혈관을 보호하며 간·종양을 절제해야 하는 도전이 따른다.
생체 간이식에서 기증자의 간 절제는 더 난제다. 기증자의 남은 간과 이식한 간 모두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 김 교수는 이를 개복수술과 같은 안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복강경으로 해낸다. 0.9% 합병증률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 간이식을 위해 시행된 3348건의 기증자 우엽(오른쪽 갈비뼈 밑에 위치하는 간 부위)절제술 가운데 복강경 329건, 개복 3019건을 분석한 결과다. 사실상 합병증이 없는 것에 가까운 수치로 평가된다. 일반적인 합병증 발생률은 10% 남짓이다. 5%면 낮은 것으로 본다.
김기훈 교수는 “늘 완벽을 추구하고 싶다. 수술을 더 안전하고 빠르게 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한정된 수술방과 의료 인력으로 더 많은 환자를 살려보겠다는 집념이었다. 간 기증은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주로 한다. 기증자가 잘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가야 수혜자도 안심한다. 그는 “상처가 작아도 합병증이 생기면 의미 없다”며 “출혈과 담즙 누출, 담도 협착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우리 팀은 이런 합병증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 비결을 물었다.
시야 확보는 어떻게 하나.
“운동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 수술 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다. 환자마다 간의 해부학적 구조가 다 다르다. 피부를 절개하는 순간부터 그다음 과정 하나하나 예상해 미리 수술해 보면 예측이 된다. 실제 수술에서 시간이 단축되고 안전성도 높아진다. 외과 의사는 CT·MRI 영상을 늘 봐야 하고, 해부학책과 친해야 한다. 수술방에선 대화해야 문제가 안 생긴다. 의료진 각자 위치가 다르므로 서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말해줘야 안 보이는 곳의 시야까지 확보한다. 종양이 찢어지거나 간을 옮기다가 아래쪽 혈관이 터져 대량 출혈이 발생하는상황도 간혹 온다. 돌발 상황에 즉각 대응하도록 늘 긴장하며 대비해야 한다.”
환자 선별 기준은.
“이번 연구에서 문맥(위장관·비장에서 간으로 가는 혈관)과 담도의 변이가 합병증 발생의 주요 위험 요인임을 밝혀냈다. 이런 기준 제시는 의료진에게 안전하게 경험을 쌓은 뒤 기준을 넓혀가라는 의미도 있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의료진이 무턱대고 시도하면 환자가 피해를 본다. 안전지대를 확보하려면 경험과 함께 제대로 된 수술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수술 영상을 보면 배울 수 있고, 국내외 의료진과 교류할 기회도 많아진다.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여전히 도전적인 수술을 하나.
“두 달 전 수술 한 64세 간암 환자 사례가 있다. 간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접근하기 까다로운 위치에 4㎝의 종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장 큰 혈관(대정맥) 위에 암 덩어리가 얹혀 있는 동시에 좌우 간으로 혈류가 들어가는 부위에 숨어 있었다. 개복 수술로도 쉽지 않은 케이스였는데, 복강경으로 혈관 손상 없이 암 덩어리만 뗐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 발표가 거의 없다. 어려운 수술에 도전하지만, 원칙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간이 찢어지거나 종양이 터지면 암이 한순간에 복막으로 전이된다. 자신감을 갖되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한국인의 간 질환 추세가 변하나.
“알코올성·비알코올성 지방간과 이로 인한 간경화·간염이 증가하는 추세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이다. 당뇨·고혈압·비만이 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젊다고 해서 간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병원을 두려워 말 것을 당부드리고 싶다. 정기적으로 필요한 검사를 받길 권한다. 의사와 환자는 병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같은 편이다. 치료 과정에서 신뢰가 형성될 때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민간요법을 피하라고 당부하는데도 반신반의하다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복수가 차서 오는 환자를 흔히 본다.”
김기훈 교수는 2027년 아시아·태평양간담췌외과 학회를 부산에 유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9년 서울에 유치한 데 이어 불과 8년 만이다. 경쟁국인 호주·말레이시아를 제쳤다. 국제 간담췌외과학회(ISLS)를 창립하고 사무총장으로서 쌓아온 그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한몫했다. 김 교수는 수술 현장을 전 세계로 생중계하는 ‘라이브 서저리’의 주요 집도의다. 2008년엔 아시아·태평양 최초로 복강경 기증자 간이식 절제술을 성공시키며 한국을 세계적인 간이식 의료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