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 겸, 겸’

2025-03-19

침실 겸 거실 겸 부엌인 원룸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돈도 아낄 겸 운동도 할 겸 걸어서 출퇴근한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목적을 이루면, 흔한 말로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 먹고다. 그래서일까. 정부가 18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그 역시 각종 직무를 겸하며 1인3역 중이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본디 임무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역할까지 맡고 있다.

‘대통령 겸 국무총리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세 묶음의 ‘관계장관회의’답게 이날 회의에선 미국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부터 서울 집값 안정과 농촌 소멸 대응 전략까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현안이 논의됐다.

구체적인 정부 대책으론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과 유니콘 벤처기업 등에 75조원 규모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이 언급됐다. AI 반도체, 바이오, 양자 기술 등 이른바 ‘3대 게임체인저’ 분야엔 예산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올 상반기 중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하고, 한국형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혁신 전략도 수립하기로 했다. 양자전략위를 출범시켜 올 하반기 중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하는 방안도 나왔다.

1%대로 추락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 경제동력을 찾자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과연 이날 발표한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서민들은 이날 회의 결과에 어떤 생각을 할까.

최 대행이 해야 할 일은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 12·3 비상계엄 후 이어지는 불안의 밤을 끝내는 것이다. 장밋빛 청사진 제시에 앞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등 주어진 책무부터 이행했으면 한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북쪽 최고 권력자는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겸 무력총사령관이다. 권력 공백기에 최 대행이 자신을 북한 최고 권력자와 동일시하며 착각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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