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S 출범 좌담회] “금융 특이점 도래…규제 완화 아닌 전환으로 풀어야”

2025-03-20

금융 특이점이 도래했다. 인공지능(AI)·블록체인·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이 전통 금융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다만, 실체와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백서를 통해 블록체인 구조를 구체화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실질적 가치 창출에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AI 기반 자동화 금융,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금융(DeFi),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 논의 등 기술 주도의 새로운 금융질서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혼란과 변화를 정리하고 실체를 검토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자신문은 이달 19일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를 공식 발족했다. SFS는 이달부터 매달 1회 정기 회의를 통해 총 12회차로 미래 금융 생태계 변화와 기술 실체, 방향성에 대한 검토, 정책적 해법과 제도적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할 계획이다. SFS 출범을 기념해 금융 정책과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현직 고위 인사들과 함께 좌담회를 열었다. 신기술이 불러올 금융 혁신과 충격을 전망하고 정책적 해법을 논의했다.

〈참석자〉 (가나다순)

△김용범 해시드 오픈리서치 대표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 (전 금융보안원장)

△유재수 간사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 국장)

△윤종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전 기업은행장)

△이억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전 기획재정부1차관)

△사회=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사회(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블록체인 기술의 실체와 금융 영향력은 무엇인가.

◇김용범=블록체인은 컴퓨터 암호학 기반의 보안기술로 매우 협소한 영역에서 출발했다. 이 기술이 금융 영역으로 확장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 제안은 기존 레거시 금융 시스템의 결핍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당시 제도권 금융은 과잉 혹은 결핍으로 인해 실물경제와 괴리됐고,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블록체인이 보완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특히 계좌 접근이 어려운 금융소외 계층에 스마트폰과 앱 하나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고비용·저효율·접근성 부족이라는 전통 금융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며, 수수료·속도·절차 측면에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보더리스(borderless)' 솔루션으로 작동하며, 전통 금융과 병행하거나 대안으로 진화할 수 있다.

◇김철웅=블록체인이나 디파이 같은 기술이 본질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운영 효율이나 인력 감축 수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24시간 자동화된 거래, 플랫폼 기반 자산 관리 등, 금융 서비스의 본질 자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존 금융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잠재력을 지녔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한다.

◇사회=구체적으로 최근 탈중앙화 금융(디파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김용범=디파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대안이라기보다, 금융이 해결하지 못했던 영역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은행 계좌조차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도 스마트폰 하나로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고, 수수료나 거래 속도 등에서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니스왑 같은 탈중앙화거래소(DEX)는 알고리즘 기반으로 자동 매칭을 실행하며, 전통적인 오더북 기반 거래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중심적 금융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디파이에 대한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서도초기 우려와 달리 디파이는 레버리지는 낮고 마진 관리도 보수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내재적 규율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미 시장의 신뢰 메커니즘을 일정 부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24시간 자동화된 거래 등 새로운 금융 기술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사회=웹3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웹2와 웹3의 핵심 차이는 무엇이며, 금융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유재수=웹3는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 거래가 인터넷망에서 직접 이뤄지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 핵심이다. 인터넷망과 금융망이 하나의 '레일' 위에서 작동한다. 웹2 시기에는 금융 거래가 인터넷망에서 직접 이뤄지지 못했고, 주로 폐쇄망이나 전용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웹3에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금융 데이터와 자산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송수신하고 결제할 수 있다.

전통 금융기관이 맡아왔던 커스터디, 지급결제, 여신 등의 기능도 탈중앙화 방식으로 구현되면서, 기존 금융 용어나 구조 자체가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다만 현재 웹3는 여전히 중앙화된 구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 탈중앙화를 실현하려면 제도적, 기술적 정비가 필요하다.

◇사회=전통금융과 웹3의 관계를 정의한다면.

◇유재수=웹3는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여전히 중앙화돼있고 투기적인 요소가 가능하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거래 인프라로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 금융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 역시 새롭게 재정의되어야 하며, 양 체계 간 거버넌스 정립과 규제 접목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김용범=웹3 기술은 전통금융의 '과잉'과 '결핍'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통 금융은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거나 접근성이 낮은 영역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웹3 기술은 이들에게 훨씬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은행망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시간도 단축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양쪽이 가진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질적 논의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융합해 나아가야 한다.

◇이억원=전통 금융과 싱귤래리티 금융은 단순한 대립이나 대체 관계가 아니라,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금융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금융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시장 구조, 금융상품, 소비자와의 관계, 그리고 금융과 실물경제의 연결 방식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싱귤래리티 금융은 기존 전통 금융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거나 확장하는 한편, 금융의 외연을 비금융·빅테크 영역으로 넓히며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앞으로는 중앙은행·금융당국 등 제도권과의 관계 설정, 국제적 규범의 정합성, 소비자 편익 및 시장 작동원리까지 포함해 규제가 시장에 어떤 균열 또는 새로운 활로를 제공할 수 있는지 진단하는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전통 금융과 신금융이 맞물려 형성해나갈 금융 시스템의 미래 방향성을 더 명확하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다.

◇사회=기술 주도형 금융 혁신이 확산하는 시대다. 정부와 정책 당국 역할은 무엇인가.

◇윤종원=정부는 기술을 억제하거나 방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의 성격과 영향을 정확히 이해한 뒤, 소비자 보호와 시스템 안정이라는 원칙 아래에서 중립적이고 유연한 정책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술 대응 프레임워크를 설계할 때 과거 가상자산 정책을 다룰 때 제기됐던 '금가분리'처럼 금융과 신기술을 분리하는 시각보다, 기술 중립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가로막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부작용은 관리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김철웅=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금융 생태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촉매다. 현재 전통 금융은 폐쇄망 기반 인프라, 정해진 운영시간, 대면 중심 절차 등으로 구성돼 있어 24시간 자동화된 거래나 플랫폼 기반 자산 관리 같은 디지털 금융의 특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런 제약 속에서는 신기술은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규제를 단순히 완화할 게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제 자체를 전환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크립토, 디파이 등 디지털 기술이 실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억원=정부는 변화의 흐름을 늦추거나 억제하는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전통 금융과 신기술의 관계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대조적 보완'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두 체계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새로운 금융 지형에서 등장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위험 요소를 진단하고, 시장 작동 원리와 규제 간의 균형을 재정의하는 것이 정부가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다.

◇사회=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앞으로 어떤 논의가 더 이어져야 하는가.

◇유재수=현재 금융 환경은 규제 중심의 전통 금융과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금융이 병렬적으로 공존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기존 금융 규제 관행인 고객확인제도(KYC), 자금세탁방지(AML) 등과 웹3 같은 새로운 환경에 완벽하게 호환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디지털 금융의 확장성에도 제약이 존재한다. 디지털 금융이 초래하는 변화는 단순히 크립토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전통 금융 시스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기존 규제 틀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규제 체계와 거버넌스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통 금융과 신금융 간의 상호작용과 영향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개념 수준에서 논의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제도, 용어, 기능 전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김철웅=금융권은 여전히 블록체인이나 디파이, AI 같은 기술을 단순한 인력 감축이나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금융 인프라 전체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의 동력이며,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금융회사는 기술이 시스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실 기반으로 점검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닌,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금융당국과 산업 전반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억원=전통 금융과 싱귤래리티 금융 사이에는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대체하거나 전복하는 관계가 아니라, 확장과 보완, 경쟁이 혼재된 복합 구조다. 이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 시장의 작동 원리, 금융 상품, 규제 체계 전반을 새로운 틀에서 재해석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금융과 실물 경제, 소비자, 정부의 역할까지 포함해 금융 시스템 전반의 관계 구조를 전방위적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윤종원=이번 간담회는 디지털 기술 변화가 우리 경제·사회, 특히 금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정책과 제도의 큰 틀을 어떻게 짜야 할지를 논의하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금융과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문가들과 논의를 가다듬어 사회에 제안함으로써 큰 화두를 던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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