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고 화나도 내겐 너무 멀었던 ‘노조’···그 문턱 낮춰보겠습니다

2024-11-04

‘노조’ 원해도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

노동운동 새 실험 ‘온라인노조’ 출범

사회복지·한국어교원 지부장 인터뷰

‘사명감’이라는 압박 아래 저임금과 과로, 갑질을 견디다 소진되는 사회복지사들.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며 열악한 처우에 내몰리는 한국어교원들. 두 직종은 ‘힘들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노동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대표적인 직종들이라는 것이다.

사용자의 부당한 대우에 직접 맞서기엔 사업장이 너무 작거나, 업계가 좁아 낙인찍히기 쉽다. 노동자끼리 뭉치자니 다들 전국 각지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개별 사업장 위주로 돌아가는 기성 노조는 이들을 품기엔 한계가 많다. 두 직종만의 애로사항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 상당수가 비슷한 이유로 노조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속앓이만 하던 두 직종 노동자들이 지난 3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를 출범시켰다.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는 업종·직종별 노조라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일 수 있고, 익명활동도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 노조. 사회복지사지부장 최지원씨(30)와 한국어교원지부장 이창용씨(50)를 지난달 30일과 31일 각각 만났다.

7년차 사회복지사인 최씨는 “사회복지사들은 대우가 낮고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복지사니까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면서 갑질이나 강요를 많이 당한다”고 했다. 최씨도 ‘30분 일찍 출근해 기관장실 청소’ ‘행사 장기자랑’ 등을 겼었다. 고민하다가 문제를 제기하니 기관장과 상사들은 “그걸 왜 네가 바꾸려 하느냐”며 “오래된 문화고, 나도 했으니 후배들도 해야 한다”고 했다. 기관장 집의 전구를 갈았다는 동료도 있었다.

비슷한 연차 동료들과 고민을 나눠도 ‘공감’과 ‘성토’에 그쳤다. 최씨는 “업계가 좁고 소규모 시설이 많으며, 기관장들의 네트워크가 강하다”며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 사회복지사들은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고 했다. 개인 자격으로 기성 산별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도 가입해봤지만, 기관별 지부·지회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한국어교원도 비슷한 사정이다. 연평균 수입은 1357만원이고 근로계약서나 4대보험을 제대로 갖춘 경우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퇴직금 등 의무가 없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계약을 맺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이 일한다. 네이버 카페에 ‘한국어교원을 해볼까 한다’는 글이 올라오면 ‘어지간하면 오지 말라’ ‘참으셔라’라는 댓글이 달린다.

서울대에서 어학연수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씨는 2018년, 학교 동료들과 민주노총 대학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대학이 시간강사 한국어교원들의 강의시수를 제한했을 때였다. 노조는 시수 확보와 고용안정 등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씨의 고민은 ‘우리 학교 한국어교원’이 아닌, ‘전체 한국어교원’을 향해 있었다. 여러 대학 어학당과 초·중등학교, 이주민 교육기관 등에 뿔뿔이 흩어진 한국어교원들을 기존 노조의 틀 안에 모으기는 어려웠다.

이씨는 “기성 노조는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을 조합원으로 받기가 어렵다”며 “한국어교원 중 대학 어학당에서 일하는 경우는 30%뿐이고, 그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극히 일부 어학당 교원만 (노조를 해서) 좋아진다면 다른 분들은 방법이 없다. 우리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씨는 “예를 들면 초등학교에는 웬만하면 한국어교원이 1명뿐이고 6~9개월 계약을 맺는다”며 “그분들은 기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근무 특성상 뭉치기도 행동하기도 어려웠던 이들은 온라인노조 준비 소식을 듣고 직장갑질119를 만났다. 최씨는 “(우리끼리) 얘기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데, 결국엔 노조만큼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자기 현장에서 일하는 누구도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기존 노조에서 안 되던 것들이 다 되는 형태였다”며 “개인 자격도 되고, 무기계약직이 아니어도 되고, 대학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운영진들과 함께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알리고 있다”며 “기존의 노조활동이 너무 무겁거나 어렵다고 느꼈던 분들,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있는 분들에게 온라인으로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대학노조 때 정의당과 진행했던 한국어교원 처우개선 활동에서 연이 닿은 이들에게 연락했다. 현재 각 지부에 30여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없던 길을 가는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은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을 노조활동과 어떻게 잘 연결지을지가 고민이다. 이씨는 “노조 밖으로 내몰린 분들을 품자는 취지에서 온라인은 방법적 측면에 가까울 것”이라며 “기존의 것(대면 노조활동)과 새로운 것(온라인)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최씨는 “익명성 보장이 한편에서는 우려되는 것도 있다”며 “운영진이 한명한명 연락하며 신원을 확인하고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규정도 마련했다”고 했다.

걱정보다 ‘새로운 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들은 당장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업종별 교섭 체계 마련, 제도개선 등 중장기적 사업까지 나서겠다고 했다. 최씨는 “우선 한 명의 노동자라도 눈치를 안 보고 마음 편히 노조활동을 하게 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보건복지부와 얘기하며 정책적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사회복지지부의 3대 과제는 복지시설 사유화 철폐, 종교·기부 강요 금지,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 및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이다.

이씨는 “한국어교원들은 고용이 불안정해 명함이 없는데 명함을 만들어드리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임금명세서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더 나아가 한국어교원의 사용자인 정부와 대학과의 교섭 틀을 만들어야 하고, 한국어교원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를 해소할 법 개정 등 제도개선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노조는 두 직종 외에도 헬스트레이너, 학원강사 등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업종·직종에서도 노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최씨는 “목소리를 낼 때마다 사실 저도 겁이 나지만, 그럴 때마다 동료들이 불안해하지 말라고 해 주는 게 위안이 됐다”며 “꼭 거리에 나서서 투쟁하는 것 말고도 여러 방법과 참여형태가 있다. 직장에서 우리를 갈려나가게 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겠다. 백 마디 말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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