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을지대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이 26일째로 장기화 국면을 맞는 가운데 노사 양측은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노원을지대병원지부는 지난 6월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2024년 산별현장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병원 노조는 2017년 파업 당시 합의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인력 확충, 부서별 적정인력 운영을 위한 노사 간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사립대병원과의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무분별한 스페셜 근무와 전담간호사(PA) 파견 남발 등 파행적인 근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노사가 20차례 이상 교섭을 진행했으나 사측이 진전된 안을 내기는 커녕, 재단 내 병원 간 근로조건 차별을 조장하는 안을 제시했다"며 지난달 10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단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응급실, 수술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유지업무에는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이로써 노원을지대병원 노조는 올해까지 3년 연속 파업을 벌이게 됐다.
문제는 파업 돌입 26일째가 되도록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노원을지대병원은 노원구 인근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역 거점병원으로 꼽힌다. 올해 2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현장을 이탈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한달 가까이 노원을지대병원의 파업 사태가 지속되자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차봉은 지부장은 파업 22일차인 지난달 31일 오전 9시 병원 로비에서 열린 파업출정식에서 삭발식을 진행하며 투쟁 결의를 밝혔다. 파업이 22일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경영 위기 핑계, 구조조정 협박을 하며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하고 장기 파업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가 임금인상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병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오는 등 노사갈등이 일파만파 번지는 모양새다.
급기야 노원지역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일 병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원 을지병원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병원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보고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용순옥 노원공동행동 대표는 “노동자들이 오죽하면 임금을 포기하고 총파업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겠느냐"며 "병원 경영이 악화되었다면 병원 경영진과 집단 의료거부를 하고 있는 의사들의 책임 아닌가.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급 휴직을 강요하고 강제로 연차를 쓰게 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노원을지대병원은 을지재단에서 운영하는 4개 병원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 매년 고유목적기금이라는 명목으로 100억 원 가까이 적립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데도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병원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노조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임금동결이 아닌 1.5%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으나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노조가 본 사업장에서의 파업도 모자라 지난 10월 1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의정부을지대병원까지 진출해 원정 집회를 열고 악의적인 비방글이 담긴 피켓시위도 벌이고 있다"며 "산하 의료기관의 임금인상률과 본원의 임금인상률을 단순 비교해 같은 재단의 구성원을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의료원에 속해있더라도 각 병원은 법인과 사업장이 다르고 실적 역시 다른 만큼, 병원 수익이 증가했을 때만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79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결과 10월 1일 기준 정규직 비율이 86.92%에 달한다며 주요 쟁점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서도 합의사항 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급 사립대 병원과의 임금 격차나 PA 파견 남발 등 근무 편성에 관한 노조 측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26일째 파업이 이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대다수 직원들이 환자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필수 유지 업무인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분만실, 인공신장실 등은 정상 운영 중이며 수술이나 입원을 앞둔 환자들의 경우 중증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진행하고 있다"며 "법과 원칙이 준수되는 가운데 노사 간 합의를 통한 진료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