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윤석열 정권을 향해 퇴진하라며 사실상 ‘정치적 총파업’에 돌입할 채비를 마쳤다. 박근혜 정부 당시 탄핵 촉구 활동을 벌였던 것처럼 이번 주말 도심 집회를 시작으로 노동계의 정치 투쟁 강도는 점점 세질 전망이다. 근로기준법, 정년 연장 등 근로자 삶과 직결된 노동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보다는 길거리 투쟁에만 몰두할 우려도 커졌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지형을 양분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9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양대 노총 모두 그동안 단일 집회에서 조합원과 연대 시민단체 구성원 등 수만명을 동원해왔다. 특히 이번 집회가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향후 후반기 노정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 ‘9일 정권 퇴진총궐기 선포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양 위원장은 “분노한 민심 반격의 날, 노동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나갈 것”이라며 “정권이 유지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운동본부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분노한 시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고 사실상 이번 집회가 박 정부 당시 촛불집회란 점을 환기했다. 운동본부는 이번 주말 집회 참여 인원을 10만 명으로 추정하고 오는 20일, 내달 7일까지 총 3차 집회 계획도 밝혔다.
정권 초부터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했던 민주노총과 운동본부 연대는 예정됐다. 운동본부에는 진보당, 진보대학생넷,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43개 노동시민정치단체가 참여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에도 전면에 섰었다.
윤 정부는 민주노총의 이런 정치적 행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고 노정 갈등 양상으로 충돌해왔다. 단적인 예로 윤 대통령부터 현 정부의 고용부 장관 모두 취임 이후 민주노총을 방문해 공식 면담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민주노총과 정부의 노정 대화가 끊긴 것이다. 김민석 고용부 차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양대 노총이 여러 정부위원회에 배재되고 있다는 질의에 “민주노총은 정부위원회 어디에 참여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정부는 못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 노정 갈등은 양대 노총의 역할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한국노총은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정년 연장, 임금·근로시간제도 개편, 산업 전환, 기후 위기 등 노동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해 노동계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런 맥락으로 한국노총은 9일 집회도 정권보다 정부의 노동정책 비판에 주력할 방침이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일명 노란봉투법 제정, 65세 법정 정년연장 등이 집회의 핵심 구호로 정해졌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에서 실리를 얻는 투쟁을 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경사노위가 정부의 정책 도구라는 판단하고 경사노위에 불참해왔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처럼 노동정책의 변화와 비판을 촉구하는 단계를 넘어 이미 정권 자체의 퇴진으로 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운동본부의 기자회견문도 대통령 지지율, 김건희 여사 의혹, 안보 상황 등 노동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없는 내용들이 상당수였다.
앞으로 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목소리가 더 세질지는 야당, 한국노총과 연대 여부에 달려 있다. 통상 민주노총은 소속 사업장들의 교섭을 위해 총파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올해는 이 목적의 총파업을 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운동을 위한 연대 만들기에 주력했다는 시각도 있다. 일단 민주노총은 2일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역 앞에서 연 정부 규탄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주말 집회에도 민주당은 참여하지 않는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앞으로 민주당과 어떤 활동을 할지는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연대 여부는 노사정 대화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한국노총은 2016년과 작년 경사노위 참여를 중단한 전례가 있다. 2016년에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일명 양대지침을 거부하기 위해 경사노위를 떠났다. 작년에는 노정 갈등 속 경사노위 참여 중단 선언 직후 민주노총과 연대 투쟁에 나선다고 밝혔다.